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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삼국유사에 이미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5세기 경상도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엔 전남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 김’이 등장한다. 구운김, 양념에 무친 파래 반찬 형태였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한끼 식사, 일품요리에 가까운 ‘김밥’으로 발전한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다. 김 위에 쌀밥을 얇게 펴 깔고 대나무 발로 돌돌 만 ‘노리마키’(海苔卷き: 김 말이)가 일제시대 때 들어왔다.

밥 속 내용물이 주로 단무지 같은 절임채소나 다랑어 등 생선회였던 노리마키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김밥으로 발전한다. 미국 일식집 인기 메뉴 ‘캘리포니아 롤’은 1960년대 그쪽에 진출한 노리마키의 후신이다.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 신문기사에 실린 ‘봄놀이 야외도시락’ 조리법을 보면 김밥은 아직 초밥에 가까웠다. 집집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일제시대를 경험한 할머니들이나 그분들께 배운 엄마들이 싸준 김밥은 ‘김초밥’이라 불리곤 했다.

한국 김밥이 맨밥인 데 비해 일본은 기본적으로 초밥이다. 고슬고슬한 밥에 식초·소금·설탕을 섞어 뿌려 살짝 새콤달콤하다. 기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식초란 음식의 보존성 뿐 아니라 고온다습한 기후를 사는 사람들 건강에 도움을 준다. 초밥과 각종 재료(주로 어패류)를 조합한 음식이 ‘스시’다. 기원은 에도시대(1603~1869) 동남아시아에서 들어 온 생선 발효식품이었다. 스시란 이름은 ‘식초 절임음식’, ‘스’(醋) ‘시’(담글 자漬의 일본어 발음) ‘스빠이’(시큼한) 등의 어원을 계승한다.

스시를 한자로 생선절임을 뜻하는 글자들(물고기 어 魚+잠깐 사乍, 魚 +뜻 旨)을 썼는데, 훗날 ‘壽司’가 일반화됐다. 음역인 동시에 좋은 뜻의 한자를 얹어 건강식 이미지를 살렸다. 1958년 오사카에 최초의 ‘회전초밥집’ 출현 이래 스시는 서민 속으로 파고든다. 고급스러움, 창조성 면에선 한국에 등장한 회전초밥집이 리메이크의 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김밥은 완전히 한국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시금치·당근·계란(또는 단무지) 등이 기본이지만 변주가 자유롭다. 흰밥과 검정색 김에 초록·주홍·노랑색 야채들이 어울리며 심미 효과도 중시된다. 한 세대 한국인들에겐 소풍 갈 때나 먹는 특별식으로서의 추억이 그래서 강한지 모른다. 해외 한국인들의 파티 음식에 김밥은 잡채와 함께 가장 사랑받는 메뉴다. 상차림이 돋보이고 마른 김만 확보하면 지구촌 어디서든 재현 가능하다. 잡채도 김밥도 발상지와 무관하게 널리 한식으로 인정받는다. 문화·문명의 전파란 원래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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