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김세원

초등학교 4학년 때니 1970년이었나 보다. 전국자유교양 경시대회 강원도지역대회에서 1위로 입상해 청와대 격려행사에 초청받았다. 필자를 포함해 전국에서 모인 초중고 학생들은 잔뜩 들떠있었다. 하지만 총든 군인들이 지키는 철문을 여러 차례 통과하는 동안, 버스 안은 무섭게 조용했다. TV에서만 보았던 육영수 여사를 만나고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청와대와 관련된 최초의 기억은 위압적이고 딱딱한 닫힌 공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21일 업무보고에서 청와대를 최대한 보전하되 문화예술과 역사, 자연을 품은 고품격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본관1층 로비와 영빈관은 원형을 보전해 미술품 특별기획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본관과 관저 등은 역대 대통령을 조망하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란다.

청와대는 1939년 조선총독 관저로 출발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역사에 편입되면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4·19혁명과 산업화, 5·18광주민주화혁명과 군부독재, 6월항쟁과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분출된 현장이자 영욕으로 점철된 권력의 심장부였다.

박보균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 개방은 권위주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와의 결별을 의미한다"며 "소수의 권력자들만 보고 즐기던 청와대 소장,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 작품들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문체부가 모델로 제시한 베르사유 궁은 2008년부터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를 매년 선정해 1년간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필자는 2014년 이우환 화백의 전시 개막 행사에 초대받아 베르사유궁 내부와 정원을 둘러본 적이 있다. 홍보담당자는 전시회 기획 동기를 묻자 "꾸준히 세계 각국의 젊은 관람객을 불러 모으려면 350년 세월을 뛰어넘는 예술거장들의 대화를 통해 베르사유궁을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그래 맞다. 박제된 역사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문화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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