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근
박석근

"같은 사건이 한 번 일어났다면 일상적 사건이고, 두 번 일어났다면 우연의 일치다. 그러나 세 번째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필연이다." 이 말은 과거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도시였던 시카고의 갱들 사이에 회자됐던 말이다.

지난 28일, 또 한 사람이 죽었다. 망자(亡者)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의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했는데, 공교롭게 그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로서 이재명 의혹과 관련된 죽음은 벌써 네 번째다.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 속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난 29일, 대법원은 질질 끌어오던 4·15총선 선거무효소송 재판을 마침내 끝냈다. 원고청구 기각. 판결문의 핵심대목을 그대로 적시하면 이렇다. "피고(중앙선관위)는 백업용 서버를 파기하고 선거용 서버에 대한 해체·이전을 하였으며, 나아가 원고는 이 사건 서버에 대하여 포렌식 자료 확보를 위하여 감정신청을 하였음에도 거부당하였고, 피고는 통합선거인명부 원본 검증 기회를 차단하였으며, 투표지 분류기에 저장된 투표지 이미지 파일의 원본을 삭제함으로써 선거의 사후검증을 불가능하게 하는 등 이 사건 선거소송을 방해하였다" 라고 대법은 중앙선관위의 선거방해 사실, 즉 선거무결성(選擧無缺性)의 원칙이 훼손된 사실을 인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청구 기각 선고를 내렸다. 왜 그랬을까? 선고 이유를 보자. "원고는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 중앙선관위인지, 제3자인지, 만약 제3자라면 어떤 세력인지를 증명하지 못했다."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원고가 범인을 잡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란 말과 상통한다. 수사권이 없는 원고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기각이유를 대는 것은 두 경우 중 하나가 분명하다. 판사가 의도적으로 범죄의 숨김과 은폐를 눈감았거나, 사실을 증명이 어려운 진실의 영역에 포함시켜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실릴까. 판결문을 다시 살펴보자. 원고의 선거 관련 전산자료 조사 신청에 대하여 "법원은 이 부분 증거조사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원고의 이 부분(전산자료) 감정신청을 채택하지 아니하였다."

4·15부정선거 재판은 숨김과 은폐 유무를 가리는 재판이었다. 선거 관련 전산자료는 이 사건의 핵심적 부분으로, 감정을 통해 조작·오염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판결문대로 설령 원고가 증거조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직권으로 감정신청을 했어야 마땅했다. 대법원 스스로 최선을 다해 심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다. 선거소송은 사인(私人) 간이 아니라 공적인 다툼이기에 증거조사에 대해 소명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기각의 사유가 될 순 없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의심할 여지없이 뚜렷한 것이다. 진실은 진리에 근접해서 신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능히 인간의 능력으로 밝힐 수 있다. 사실은 은폐와 숨김의 반대이며, 은폐와 숨김을 걷어내면 사실이 드러난다. 이재명 의원 의혹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들, 그리고 4·15부정선거 재판의 공통점은, 국가기관이 범죄의 숨김과 은폐의 당사자거나, 사실규명을 마치 증명이 어려운 진실처럼 취급해 판단유보의 영역에 방치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국가기관은 결과적으로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다.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 것은 총선의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린 애국시민들 덕분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 있다. 그들로 인해 또다시 저질러질 부정선거 실행이 여의치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법정의가 실종된 국가는 결국 곰팡이가 빵을 점령하듯 안으로부터 썩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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