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좌파의 가장 확실한 장기는 용어를 선점하는데 능하다는 것이다. 평등한 인간미 넘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주장들을 포장할 수 있는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내면서 훈련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이상 어느 나라에서나 복지·인권·평화·환경 같은 아름다운(?) 용어들은 죄다 진보·좌파의 전유물이 되어왔다.

우리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 소련과 공산진영의 붕괴는 해묵은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있던 한국의 좌파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육지책으로 만든 대안이 민족과 통일이었다. 이는 지금도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반미 주체사상이 뿌리내리는 토대가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환경·복지·성평등 같은 용어들도 다발적으로 선점해 나갔고, 결국 이를 기반으로 급기야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창출했다.

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자신들이 선점했던 용어들에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국 사회를 선한 집단과 나쁜 집단으로 구분짓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지지층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보수진영에 원죄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개혁 논리는, 좌파 진영의 많은 모순과 무능에도 불구하고, 40% 수준의 견고한 지지율을 항상 유지하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언론개혁’이란 용어는 좌파의 가장 확실한 전유물이다. 김대중 정권에서 처음 등장했던 언론개혁은 ‘안티조선’으로 시작해 ‘안티조·중·동’ 최근에는 ‘안티종편’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집요하게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강변하고 밀어붙인 결과, 지금은 내용은 몰라도 동의하는 국민들도 많다. 반대로 보수진영에서 언론개혁이란 용어는 일종의 금기어처럼 인식되고 있다. 대신 정상화·혁신 같은 어딘가 빈약해 보이는 용어들을 찾는 데 급급해왔다.

오랫동안 정치권력과 밀착해 기득권을 누려온 일부 언론들의 행태는 고쳐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좌파 세력이 주장하는 언론개혁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 지형을 구축하겠다는 정치적 이해득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강력한 지지기반 아니 콜라보인,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KBS와 MBC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TBS를 비롯한 정권 친위 방송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하고, 자기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매체들을 압박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언론개혁인 것이다.

심지어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언론 취재 활동을 완전히 박탈하는 언론중재법과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영원히 장악하겠다는 방송법 개정을 언론개혁 입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자신들이 자행했던 패악들을 감추고, 공영방송을 영원히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으로 만들겠다는 수구적 아니 반개혁적 행태다.

진정한 언론개혁은 이렇게 정치적으로 왜곡된 수구언론들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는 제대로 된 언론개혁을 추진해야 할 소명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언론개혁에 대해 지극히 미온적이다. 언론개혁이란 말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도리어 언론개혁이라 했다가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로부터도 공격받을까 두려운 게 분위기다.

지금은 좌파가 장악하고 있지만,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1980년대 후반 국가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방송 종사자들의 저항에서 시작됐다. 그 결과 제도상으로 퇴장한 정치권력 자리를 언론노조 그것도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차지한 것이다. 공영방송이 주인인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치권력과 결탁된 언론노조가 장악하고 후견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언론개혁은 무단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노조를 퇴출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좌파 세력이 전유하고 있는 언론개혁이란 용어를 되찾아 원래의 의미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언론개혁의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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