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에 대해 묻다

 

밥을 먹다가 아내가 물었다

굴욕에 대해 아느냐고

나는

이러저러하게 대답하였다

아직 냉전 중이라서

조금 굴욕적이었다

밥을 먹다가 아내가 말했다

굴욕은 밥을 깨작깨작 먹는 것이라고

박철(1960~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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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기에 활동한 작가 샤토브리앙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샤토브리앙은 루이 16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귀국하여 반혁명군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었고, 반혁명군이 패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여 집필활동에 몰두했다. 샤토브리앙은 빅토르 위고보다 더 유명한 작가였지만 혁명이 마침표를 찍은 뒤에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졌다. 그의 자서전 ‘무덤 저편의 기억(Me moires d‘outre-tombe)’은 문학가들과 역사가들의 필독서지만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번역서 한 권조차 없다. 샤토브리앙을 아는 사람도 드물 뿐더러 그의 이름자에 반혁명 보수수구라는 꼬리표가 붙은 탓이다. 아무튼 샤토브리앙은 혁명기 대혼란 속에 침몰하는 국가를 구하기 위해 칼과 펜을 동시에 잡은 세계문학사에 보기 드문 행동주의 작가였다.

박철 시 ‘굴욕에 대해 묻다’를 읽다가 문득 샤토브리앙이 떠올랐다. 흰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언부언 할 것 없이 검은 것을 가져와 대비시키면 된다는 생각이 오랜 기억 속의 샤토브리앙을 호출한 것이다. 샤토브리앙은 거대담론의 작가였다. 혁명사상이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이유를 논리와 철학, 역사, 그리고 문학으로 풀었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종지부를 찍은 후 80세로 사망할 때까지 굴욕적 삶을 살았다.

박철 시인의 ‘굴욕’과 샤토브리앙의 ‘굴욕’은 뭐가 다를까 하고 생각하다가 두 가지 굴욕은 별반 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시인은 자신의 굴욕도 굴욕이지만 그보다 아내의 굴욕이 더 크다고 말한다. 역지사지의 마음을 낸 것이다. 아내가 정성껏 차린 ‘밥을 깨작깨작 먹는’다는 것은 아내의 정성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끼니 밥상을 차려야 하는 아내야말로 굴욕 중에 상 굴욕을 당하는 게 아니겠는가. 역사로부터 시대로부터 군중들로부터 굴욕을 당한 샤토브리앙과 매끼니 때마다 남편으로부터 굴욕을 당한 아내, 이 두 가지 굴욕 중 누구의 굴욕이 더 아프거나 무겁다고 말할 순 없다.

박철 시인은 사소한 일상을 시의 소재로 차용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는 문학적 명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박철에게 문학적 거대담론은 걸리버 여행기 속에 나오는 거인들의 나라 이야기다. 한번쯤 보일법한 거시적 관조의 시각은 단 한 순간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일상에서 누구나 느낄법한 소소한 감정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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