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이인철

언론은 의견을 제시하고 의제를 설정하여 현실을 이끌어간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에는 누구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서 사회적 논의를 시도한다. 그러나 넘쳐나는 의견이 대화와 토론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팩트 체크나 게이트 키핑이 간과되는 뉴미디어 상황에서, 주장의 전제인 사실이 충돌되어 토론이 어렵다.

주관적 견해가 사실을 대체하고 의견이 종교나 철학 또는 이념으로 뒷받침되면 미디어 공간은 선전의 장소가 된다. 편향된 정보만을 소비하게 되는 미디어 환경이 이를 부채질한다. 주장을 통한 자기 노출이라는 만족과 결론의 도출을 원치 않는 - 논쟁을 위한 논쟁이라는 감정 소비의 상황이다. 사실보다 주장이 앞서는 탈진실의 시대가 사회 양극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논쟁은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불요불급한 논쟁일 수도 있다. 논의의 전제인 사실을 확인하여 이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의제의 필요성을 결정해야 하며 합의를 도출해 결론을 내림으로써 불필요한 감정 소비와 대립 및 분열의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근대의 형성기인 16세기 종교전쟁이 있던 내란 시기에, 몽테뉴는 <수상록>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질문하며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을 근거로 판단 유보의 태도를 소개했다. 혼란을 낳는 독단주의의 시대에 잠시 멈춤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대립되는 주장의 전제인 사실의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고, 종교나 이념에 기초한 주관적 견해에 의해 대립을 위한 감정소비의 장이 전개되는 상황. 이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판단 유보’(epoche)는 회의(懷疑)를 통해서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로 나아가는 기회를 허용한다. 결정을 위해서 잠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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