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를 묶은 징기스칸 '초원의 길'위에 역사를 열다
유라시아를 묶은 징기스칸 '초원의 길'위에 역사를 열다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7.12.0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마병 군단에 최적화된 전술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징기스칸.
기마병 군단에 최적화된 전술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징기스칸.
몽골에서 시작된 세계사 (2)
울란바로트 외곽에 세워진 징기스칸 기마상.
울란바토르 외곽에 세워진 징기스칸 기마상.

세계정복의 천명을 받은 징기스칸

1206년 봄, 몽골국 동부의 켄타이산맥(Khentei를 ‘헨타이’라고도 함) 가운데의 오논강(Onon River)의 수원지에, 북아시아 초원지대의 제 유목민족 대표자들이 모여, 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를 소집한 사람은 ‘몽골’이라는 부족의 지도자 테무진(Temuchin 鐵木眞)이었다.

테무진은 오랫동안 기독교의 분파 네스토리우스교(중국에서는 경교景敎라 함)를 신봉한 케레이트부족(Kereit) 왕을 섬기면서, 함께 몽골고원의 제 부족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이를 후원해 준 나라가 당시 만주, 내몽골, 중국북부를 지배하고 있었던 수렵민족 쥬신(여진女眞 또는 女直이라 함)이 세웠던 금나라였다.

그러나 테무진은 몽골고원의 통일이 거의 완성되어 가던 1203년에, 섬겨 왔던 케레이트왕과 사이에 금이 가자 대담한 기습작전으로 옛 주인을 타도하고, 전 유목민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1206년에 대회의가 열린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이때 태무진의 어머니가 한때 납치당했다가 돌아올 때 데리고 온 티부텐게리(아주 신들린 사람)라는 별명을 지닌 대샤먼(shaman, 주술사) 유코츄가 있었다. 유코츄는 테무진과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였다. 이 주술사가 신탁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징기스칸의 영토가 가장 넓었을 때의 지도. 네이버 지식사전 갈무리
징기스칸의 영토가 가장 넓었을 때의 지도. 네이버 지식사전 갈무리

징기스칸 칭호 바치며 충성 맹세

“영원한 하늘의 명령이다. 천상에는 유일한 군주인 징기스칸이 있다. 그대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나의 명령을 지상의 모든 곳의 모든 사람에게, 말 다리(馬足)가 이를 수 있고, 배(舟)가 닿을 수 있고, 사자(使者)가 갈 수 있는 평지가 있는 데까지 들어서 알게 하여라. 나의 명령을 듣고도 따르지 않는 자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되고, 손이 있어도 잡을 수 없게 되고,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하늘의 명령이다.”

(왼쪽부터) 테무진의 징기스칸 즉위식. 헝가리군과 몽골군의 사요강 다리 전투.  몽골군은 코카서스와 러시아 남부까지 정벌하였다.
(왼쪽부터) 테무진의 징기스칸 즉위식. 헝가리군과 몽골군의 사요강 다리 전투. 몽골군은 코카서스와 러시아 남부까지 정벌하였다.

이 신탁의 의미는 천상의 유일신이 테무진에게 징기스칸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지상의 모든 인류의 군주로 삼겠다. 징기스칸에 무조건 따르지 않는 자는 신을 배반하는 극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자는 신이 철저하게 멸망시켜버린다는 뜻이었다. ‘징기스’라는 말은 고대 터키어의 ‘용맹한’이라는 뜻을 가진 ‘칭기즈’의 몽골어 사투리다.

이 신탁을 받아, 대회에 참석한 자 모두가 만장일치로 테무진을 전 유목민의 칸(황제 ‘한’으로도 발음)으로 추대하고, 징기스칸이라는 칭호를 바치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때부터 북아시아 유목민 전체가 징기스칸의 출신부족에서 이름을 딴 '몽골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몽골제국의 시작이며 동시에 ‘세계사’의 시작이었다.

몽골에서 세계사가 시작된 4가지 이유

그렇다면 왜 13세기의 몽골제국 건설을 세계사의 시작이라고 부를까? 여기에는 4가지 이유가 있다.

몽골 화폐에 있는 징기스칸 초상.
몽골 화폐에 있는 징기스칸 초상.

첫째로, 몽골제국은 동쪽의 중국세계와 서쪽의 지중해세계를 잇는 ‘초원의 길’을 지배하기 위하여 유라시아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 세계사의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둘째로, 몽골제국이 유라시아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면서 그때까지 존재했던 모든 정권이 한차례 백지화되고, 몽골제국으로부터 새로운 나라들로 갈라져 나왔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현대의 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태어났다.

셋째로, 북중국에서 탄생한 자본주의경제가 초원의 길을 통해서 지중해세계로 전해지고, 더 나아가 서유럽세계로 확산되어 현대의 막이 열렸다.

네 번째로, 몽골제국이 유라시아대륙의 무역이권을 독차지하면서 그 바깥에 남아있던 서유럽사람들이 그 활로를 찾아, 해상무역으로 진출하면서 역사의 주역이 다시 대륙제국으로부터 해양제국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는 몽골제국이 어떻게 하여 세계사를 바꾸게 되었는지 보겠다.

sopulg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승희 2017-12-03 12:10:23
다음 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