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중·러·일 전투기, 독도 상공서 얽힌 이유는?
[WHY] 중·러·일 전투기, 독도 상공서 얽힌 이유는?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9.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文, 이순신 아닌 고종 닮아 있어
104년 전 조선을 누가 삼키느냐, 독도서 결판났다.

지난 7월 23일 오전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다.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침범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군 전투기 18대가 교대로 발진해 360여 발의 경고사격을 가했다.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인근 한국 영공 침범 당시 일본의 자위대 군용기도 긴급 발진했다. 6.25전쟁 이후 독도 상공에서 4개국 전투기 수십기가 얽히는 실제 공중전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독도 상공이 중러일의 각축장이 된 셈이다.

그러면 왜 미일중러 등 주변국들은 독도에 집착할까? 그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실제로 104년 전 러일전쟁의 승부가 이 독도 주변에서 벌어진 일본과 러시아의 해전에서 결판났다. 그리고 이 해전의 승자가 조선을 식민지배하게 되었다. 만약 러시아가 이겼더라면 조선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다.

독도의 전략적 위치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와 러시아 발틱함대의 동해 해전에서 유감 없이 드러났다. 러일전쟁 당시에는 레이다가 없었다. 따라서 해전에서 적함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망원경을 사용하겠지만 순전히 인간의 눈으로 관측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해전에서는 적함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는 쪽이 우선 승기를 잡게 된다.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그린 작전용 해도

아키야마 사네유키. 위키백과 캡쳐

당시 일본 연합함대의 천재적 작전참모인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는 작전용 해도(海圖)를 마치 요즘 야전군의 그리드 차트처럼 경위도 각 2분 간격의 바둑판을 만든 다음 각 바둑판마다 번호를 매겼다.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이 바둑판마다 ‘인간의 눈’을 배치해 러시아 발틱함대의 이동을 실시간 관측하고 모르스 부호로 보고를 받았다.

바다에서 보게 되면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북상하는데, 맨눈으로 관측이 가능한 한도는 12해리 정도다. 그 넓은 동해에서 적함을 발견하려면 군함을 풀어서 지켜봐야하는데, 그렇게 산개하면 전투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1905년 5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의 작전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독도에다 관측소 즉 OP(Observation Post)와 무선전신중계소를 세웠다. 지구의 반경이 적도 6378, 극 6357km 인데, 독도 위도를 고려할 때 반경을 6368km 정도로 간주하면 독도의 최정상 높이 168.5m 에서 인간의 눈높이 1.5m를 더하여 170m 높이에서 보이는 수평선의 거리는 46.5km다. 

참고로 평지에서 인간의 눈높이 1.5m에서 보이는 수평선 거리는 약 4.4km다. 독도에서 보면 주변 해역을 무려 10배나 넓게 관측할 수 있었던 셈이다. 즉 러일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는 러시아 발틱함대보다 10배나 관측력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독도 관측소, 일본 함대 승리 결정적 기여

러일전쟁 당시 적함의 마스트 높이가 있을 것이므로 적함의 마스트가 보였다면 실제로는 위의 거리보다 훨씬 멀리 있는 것으로 봐도 된다. 적함의 마스트가 30m라고 가정하면, 약 19km가 추가되어 독도로부터 대략 65km까지 근접하면 적함의 마스트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망원경을 사용했을 것이다.

때문에 독도의 관측소는 일본 연합함대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실제로 1905년 5월 27∼28일 독도 주변 해역에서 벌어진 회전에서 일본함대는 독도OP의 적함 위치 정보를 가지고 발틱함대를 완전 격멸시키고 항복을 받았다. 즉 러시아 발틱함대는 일본 연합함대의 위치를 모르는데 일본 함대는 독도OP덕분에 러시아 함대의 동선을 손금 보듯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해전 이후 러시아제국은 멸망했고 일본은 욱일승천했다. 때문에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독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잘 알고 덤빈 것이다. 한편 청와대는 23일 러시아ㆍ중국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고 동해상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을 넘나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았다. 영공침범 2일후에 소집된 청와대 NSC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청와대 수석이 말한대로 이순신과 서희가 아니라 러일전쟁 당시의 고종을 닮아 있다. 

 

< 1904-1905 러일전쟁 경과 추이>

-1904∼1905 러일전쟁의 기본 성격은 조선을 누가 먹는가 하는 먹이싸움

-1904년 2월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러시아 군함을 일본함대가 기습

-일본은 하루 전 일본 육군 4개 대대를 인천에 상륙시키고, 그 중 2개 대대가 서울을 제압하 고 조선을 점령

-2월 10일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

-2월 16일~27일, 일본 육군 1개 사단 1만 4천명 인천으로 상륙

-2월23일 일본은 군사적 위압 하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한국의 국토와 한국국민을 일본의 전쟁수행체제로 끌어넣고, 마치 한국 황제의 의뢰로 일본이 한국을 위해서 싸우는 모양새를 국제적으로 만듬

-1904년 4월 중순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발틱 함대 출항

-1904년 12월5일 일본육군이 여순항 203고지 점령(일본군 1만5천명 전사, 러시아군 5천명 전사)하고 탄착수정용 OP를 설치한 후 여순항에 봉쇄되어 있는 러시아 여순함대에 공성포(攻城砲)를 퍼붓기 시작

-1904년 12월16일 러시아 여순함대 격멸

-1904년 12월30일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일본 연합함대 정비를 위해 사세보로 집결시킨 후 전황 보고를 위해 도쿄의 대본영으로 가다(작전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 대동)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발틱함대가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 제주도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해역을 경위도 각 10분씩 바둑판처럼 세분한 그리드 차트를 작성

-1905년 1월 하순 요양(遼陽)흑구대(黑溝臺)회전에서 일본군 5000여명의 사상자 및 동상자 발생

-1905년 1월28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일본은 한 일본어부가 신청한 독도에 대한 ‘독점적 어로권’ 요청을 받아들여,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고 보고 일본영토로 편입한다고 결정

-1905년 2월 말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연합함대를 이끌고 한국 진해만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석 달 동안 함포사격훈련 실시

-1905년 3월경 만주의 육전에서 일본군 승리

-1905년 5월 초 독도에 OP와 무선전신기지 설치하여 해전에 대비

-1905년 5월 27∼28일 독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일본연합함대가 발틱 함대를 격멸

-1905년 7월29일 카츠라-태프트 협약에서 미국이 일본의 한국 보호권을 인정

-1905년 8월12일 英日동맹을 개정하여 영국이 일본의 한국지배를 승인

-1905년 10월27일 일본 각의에서 한국 보호권체제 확립을 실행키로 결정

-1905년 11월17일 이토히로부미가 총칼로 위협하면서 을사보호조약강요

-1905년 포츠머스강화조약에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러시아 승인 

sopulg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