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이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를 자국 반도체 공급기반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은 ‘반도체와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중국과의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첨단기술, 군사력, 경제력 분야의 우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도에서다.

반도체와 과학법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 원자력 등 에너지, 바이오, 항공우주 등의 연구개발(R&D)은 물론 인력 양성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법안이다. 여기에 260조원 규모의 연방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 물가 상승, 경제침체, 낙태법, 그리고 치안·총기 규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반도체와 과학법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것은 과학기술 패권을 향한 미국 지도부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남긴 반도체와 과학법은 특히 미국 반도체산업의 탈(脫) 대만화와 자국 반도체산업의 자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칩4동맹’이라는 프랜드 쇼어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일본 등의 동맹국들과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동맹을 통해 중국 반도체 굴기의 숨통을 죄는 것이 목표다.

지난 2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위협에도 대만을 방문한 것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대만의 TSMC를 향해 군침을 흘리는 중국을 확실하게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만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시스템 반도체의 92%를 생산하는 TSMC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애플을 비롯한 미국의 글로벌 테크기업 대부분은 대만산 반도체에 의존한다. 특히 미사일 제작에 쓰이는 군수용 반도체 역시 70%가량은 대만산이다. 양안관계가 악화돼 TSMC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탈취되는 경우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도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은 3일 대만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류더인(劉德音·마크 리우) TSMC 회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펠로시 의장은 반도체와 과학법에 대해 설명하고, 동맹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앞서 류 회장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TSMC 공장은 가동되지 못하고 미국·중국·대만 모두 잃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반도체 탈대만화는 곧장 실현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건립중인 동맹국의 기술과 인프라 수준을 고려했을 때 TSMC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최소 2~4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가 미국에 건설중인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은 2024년에야 완공된다. 당분간 대만 반도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이 기간 동안 TSMC에 대한 중국의 야욕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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