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는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사건이 중대한 변화의 단초가 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시가 6일 재개장하는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나 시위를 사실상 열지 못하게 한 방침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원칙적으로 집회·시위가 금지돼 있는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제’ 형태로 사용 허가를 얻어 집회를 편법 개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막겠다는 조치다.

광화문광장이 시위대의 성지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촛불 시위’였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촛불 시위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을 광장으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광장 정치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절차적 엄격성이나 법적 요건을 무시하기 쉽다. 냉철한 이성보다 감정적 선동에, 엄격한 다수결의 요건보다 목소리 큰 소수의 의견에 휩쓸리기 쉬운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헌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식이 통용되는 배경이 이것이다. 그 궁극의 행태가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저질러진 최악의 국정 파탄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자행된 비이성적 선동의 대표 사례가 세월호 행사들이었다. 세월호는 단순 해상 교통사고이며 외력에 의한 침몰이 아니었으며,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이나 기획 침몰설 등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8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결론을 부인하는 자들이 조장하는 불신의 배후에 세월호 추모공간 등 광화문광장의 선동 정치가 자리잡고 있다.

길거리 시위가 민주주의의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교정하는 효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제도권 언론매체가 극소수의 손에 장악된 과거의 구조에서는 길거리 시위가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소수나 심지어 일개인이지라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얼마든지 근거를 갖추어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 전파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굳이 길거리나 광장 등 대중이 이용해야 할 공간을 장악해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전파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서울시의 이번 조치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정상화의 길로 가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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