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국제정치학 용어 중 ‘레드라인(red line)’이란 것이 있는데 ‘용인하기 힘든 수준’ 혹은 마지노선’을 의미한다. 레드라인을 설정한 국가는 상대방 국가가 자신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 국제정치에선 보통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중국은 이미 2020년 여름, 대만 문제와 관련 미국을 향해 레드라인을 설정한 적이 있었는데 첫째, 미국의 고위급 관리(인사)는 대만을 방문하지 말 것, 둘째 미국의 군용기는 대만에 착륙하지 말 것이었다. 만약 미국이 중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무시할 경우 중국은 미국 군용기가 착륙한 대만의 공항을 폭격해서 파괴하거나 미국의 군용기를 격추시킬 것이라고 협박했다. 물론 미국은 중국의 레드 라인을 철저히 무시했다.

미국은 여러 차례 군용기를 대만에 보냈고 고위급 관리들도 여러 차례 대만을 방문했다. 심지어 미국은 금년 5월 31일 상원의원 3명이 막강한 수송기인 C-17 글로브마스터 기편으로 대만의 수도를 방문했다.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들인 상원의원 3명이 군용기를 통해 대만을 방문했다는 사실에 중국은 분노했고 좌절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내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또 대만을 방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래 금년 4월 예정이었지만 연기된 것인데 중국은 관영매체들을 통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방지하기 위해 온갖 협박을 가했다. 환구시보 전 편집장 후시진(胡錫進)은 펠로시 의장의 비행기를 호위하는 미국의 전투기들이 대만 상공에 진입할 경우 중공을 침략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중국의 전투기들은 미국 전투기들과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의 비행경로를 방해할 것이며, 이것으로 불충분할 경우 중국은 미국의 비행기들을 격추시킬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같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단행됐다. 중국은 또 한 번 좌절했다. 말은 무시무시하게 했지만 미국의 힘을 당할 수 없기에 행동할 수는 없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미국은 항공모함을 파견했다.

미국은 통쾌했을 것이지만 이번 사건이 전략적으로도 현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대만 문제는 그 구조상 현상을 유지함이 미국 측의 이익이다. 중국을 또 한 번 극도로 모욕한 펠로시는 중국에게 현상 타파를 위한 빌미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인들로 하여금 대만을 점령하는 것은 역부족이지만 눈앞의 가시들인 금문도, 마조도라도 점령, 쪽팔림을 만회하리라는 결의를 다지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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