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2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022년 통일부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만큼, 통일 및 대북 정책의 비전 제시와 함께 이를 실현하기 위한 3대 원칙과 5대 핵심과제 설정 등, 통일부가 앞으로 5년간 추진해 나갈 정책 설계가 주요 보고 내용이었다.

이번에 통일부가 제시한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 비전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추진을 통해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이뤄 나간다는 것으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3대 원칙은 ① 일체의 무력도발을 불용하고 ② 호혜적인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③ 평화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5대 핵심 추진과제는 다음과 같다. ① 담대한 계획(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여 단계별로 제공할 수 있는 대북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을 중심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 신뢰 구축의 선순환 추진, ② 상호 존중에 기반한 남북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되,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합의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는 구조를 정착, ③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더불어 이산가족·국군포로 문제해결을 위한 실효적인 방안 강구로 분단 고통 해소, ④ 사회문화교류와 언론·출판·방송의 단계적 개방 등 남북 간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 동질성 회복, ⑤ 통일 기반 조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평화통일기반조성 기본법’ 제정 등 내실 있는 통일 준비이다.

통일부가 나름 야심차게 대북정책을 수립했겠지만, 이번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니 아쉬움을 넘어 실망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이다.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이 ‘왜 모두 실패했는가?’에 대한 철저한 복기를 하지 않은 채, 과거에 검토했던 정책을 그저 짜깁기한 흔적만 보이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제시한 정책 비전만 해도 그렇다.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라는 비전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비핵·개방·3000’과 거의 유사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MB 정부의 대북 정책이 겉보기로는 훨씬 구체적이고 실천력이 있어 모범답안에 가깝다. 그런데도 실패로 끝난 이유는, 북한의 체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북 정책을 수립해서다. 그리고 이는 정권 교체 시마다 반복해서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북한의 최우선 정책은 절대권력을 부자세습하는 김씨정권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를 무시한 채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고 있으며, 문을 닫아걸고 2500만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권에 ‘비핵’이나 ‘평화’를 요구하는 것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될 뿐이고, 더더구나 ‘3,000달러 소득’이라든가 ‘번영의 한반도’라는 당근은 안중에도 없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도 결국 ‘Semper Initium(항상 시작일 뿐!)’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무늬만 그럴듯한 정책을 수립하기에 앞서 모든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인 ‘김씨정권’(유의할 것은 결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다)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신중하고도 철저한 대전략을 세워야 한다.

더불어 국민의 뜻을 모아 제대로 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일관하게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5년이라는 한시적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이, 생명이 있는 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김씨정권을 상대로 해서 일거에 성과를 거두려는 시도는 어불성설이자 과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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