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7월 14일 칩4동맹에 참여 여부를 8월말까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칩4동맹이란 미국(설계), 한국·대만(생산), 일본(소재공급)이 힘을 합쳐 안전한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과 대만은 바로 참여키로 했는데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고차방정식이라며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와 언론 매체 어디도 일본과 대만은 압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생각하고 미국에서 떼어내 칩4동맹 참여를 막고자 연일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우리 언론이 사드 배치 때와 같이 "중국의 보복 가능성으로 인한 손실에 비해 참여의 실익이 적어 우려된다"며 팩트가 아니라 주관과 가정에 기초한 중국 보복을 예단하며 중국 편을 들고 나섰다. 우리 언론은 국익 개념도 없는 딴 나라 언론인가?

칩4동맹 참여 문제가 고차방정식이라면 고려해야 할 변수는 무엇인가? 아마 미중 패권경쟁의 성격 및 지속기간,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의지, 국제질서, 반도체 자체의 힘(속성), 중국 수입의존도가 높은 원자재나 중간재 대한 중국의 수출통제 등이 변수가 될 것이다.

미·중 양국은 첨단산업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지속하고 있다.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의 경쟁력 확보와 보호는 경제안보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대 중국 기술 견제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은 동맹국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서 첨단기술의 공급망, 기술 및 시장생태계, 표준 등에서 진영화 형태의 블록화를 전개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미·중 간 첨단기술의 블록화는 미국 주도의 기술제재로 인한 일종의 주종(主從)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이 핵심기술과 장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고립화되는 형태로 블록화가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블록화되는 상황에서 중간은 없다. 우리가 칩4동맹에 참여하지 않을 때 한미동맹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며, 반도체 산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다 미중간 갈등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최소 20∼30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지난 2015년 중국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의 ‘중국제조 2025’국가전략을 수립하고, 반도체 굴기를 위해 60조원 규모의 국가펀드를 조성해 지원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의 급성장을 지켜본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지난달 27일 초당적으로 ‘반도체와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향후 2023∼2027년 기간 동안 총2,527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527억 달러(약69조원)가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지원된다. 또한 ‘반도체 촉진법’을 통해 반도체 시설 및 장비투자에 25%의 세액공제도 도입된다.

국제질서를 보자. 미중 패권경쟁의 심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으로 빠른 속도로 전이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독재·권위주의 체제간의 진영 대결로 치닫고 있다. 세계는 지금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자유대한민국이 어느 편에 위치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할 정도로 자체 영향력이 막강하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모바일 등 4차산업혁명 기술 구현과 자동차·항공기·첨단무기 개발에는 첨단 반도체칩은 필수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생산시설이 안보적 요인 등으로 생산이 중단되면 세계의 공장이 올스톱 될 정도다. 반도체칩은 20세기 석유에 버금가는 21세기의 전략 자산이다. 즉 칩 공급자가 갑인 생산요소다. 아무리 큰 수요자인 중국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수요를 조절할 수 없다. 우리 반도체 생산의 60%를 중국에 수출하는데 우리가 칩4동맹에 가입한다고 조자룡의 헌칼 휘두르듯 수요를 마구 줄일 수 없다. 작년 12월에 중국 시안이 코로나로 봉쇄됐을 때 상하이 봉쇄 당시 테슬라 공장 중단과 달리 삼성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는 중단없이 가동되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마지막 변수는 우리의 칩4동맹 참여에 대해 중국 수입의존도가 높은 원자재나 중간재 대한 중국의 수출통제 등 보복 조치다. 사드체계 배치 때 중국의 롯데 제재, 한한령 조치 등을 보면 중국이 수출통제 조치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보복도 쉽지않고 해도 일시적인 조치에 그칠 것이다. 중국이 칩4동맹 참여에 대해 보복을 하면 우리도 반도체 공급을 축소하거나 WTO제소 등 정면대응 하면 된다.

이처럼 칩4동맹 참여문제는 고차방정식이 아니라 변수가 하나인 일차방정식이다. 핵심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수출통제가 실제 일어나면 칩4동맹국과 함께 풀어나가면 될 것이다. 더 이상 중국 눈치 보지 말고 참여 요청에 감사를 표하고 참여하면 되는 일이다. 오히려 요청을 받지 못했다면 고민하고 원인 파악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관계 당국의 늦지않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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