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초롬
함초롬

"헬조선을 살아가는 우리는 내일을 생각한다고 뭐가 되는 세대가 아닌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 때는 노력하면 저금하고 집도 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노력해도 그게 안 된다. 그러니 일단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한다."

필자가 한예종 영화과 선배인 이랑 감독의 이러한 전염성 강한 말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선배는 학교 동아리방 1층 건물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살았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 때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자’던 박재동 화백과 이창동 감독 그리고 도올 김용옥에게 배웠다. 옛 안기부 건물을 쓰던 이문동 캠퍼스 정문을 나서면 방석집과 작고한 김금화 만신의 무당집이 있었다. 가난과 우울 그리고 교수님들로부터 영향받은 운동권 정서가 짙은 환경이었다. 재학 중에는 시나리오 작가로 살아가던 또 다른 선배 한 명이 원룸에서 굶어 죽었는데,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와 불안을 남겼다. 그 뒤로 학교에는 자살 예방 심리상담센터가 생겼다.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지 않지? 예술가면 그래야 하는 건가?’ 나는 졸업 후 바로 영화사에 취직을 했다.

<변해야 한다>는 이랑 감독이 재학 시절 만든 단편영화다. 은모와 성경은 무용학원에 같이 다니는 친구 사이로, 서로 변화를 강요하면서 말다툼 끝에 절교하지만 같은 남자와 엮이는데, 무용학원에서 유연해지는 몸과 달리 둘의 관계는 경직되어 간다는 줄거리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예술 활동을 이어가던 선배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는 ‘명예는 충족됐는데 돈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트로피를 50만 원에 파는 퍼포먼스를, 서울가요대상에서는 수상 직후 ‘차별금지법, 지금’이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2022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에 함께 후보에 오른 아이유를 제치고 트로피를 탔다. 지난 대선 때는 심상정 후보의 공동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여성혐오로 표몰이 하는 대선 후보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는다. 나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원한다!’고 외쳤다.

선배는 최근 발표한 ‘늑대가 나타났다’는 노래에서도 놀랍도록 여전히 헬조선을 이야기한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부자들이 좋은 빵을 전부 사버린 걸 알게 된 사람들이 막대기와 갈퀴를 들고 성문을 두드린다. 폭도가 나타났다." 늦지 않았다면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선배, 이제 변해야 해요. 우린 굶어 죽지 않아요. 헬조선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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