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딜링룸.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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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미군단의 자금이 증시에서 이탈해 채권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이 강화되고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중자금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증시 주변자금은 164조8900억원 수준으로 지난달 초의 169조3000억원에 비해 한달새 4조4000억원가량 줄었다. 투자자 예탁금, 파생상품거래 예수금, 환매조건부채권(RP), 위탁매매 미수금, 신용거래융자 잔고, 신용대주 잔고 등의 증시 주변자금은 투자 기회를 엿보며 증시 주변을 맴도는 대기성 자금이다. 국내 증시가 올해 초부터 약세를 거듭하자 더 이상 대기하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7월 4일부터 8월 4일까지 코스피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1조2189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초 코스피지수가 장중 2270선까지 떨어진 이후 완만하게 반등해 2400선에 진입하자 이를 매도 기회로 보고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는 채권을 3조5116억원 순매수했다. 유형별로는 은행을 제외한 금융사 채권인 기타금융채가 1조3550억원, 회사채가 1조304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채 4032억원, 은행채 2248억원, 특수채 1446억원의 순이다. 특수채는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과 같이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특별법인이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연초 이후 지난 4일까지 개인투자자의 채권 순매수 금액은 8조6668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조2032억원의 2.7배 규모다. 올들어 개인투자자의 월별 채권 순매수 금액도 1월 3283억원, 2월 4663억원, 3월 6506억원, 4월 1조680억원, 5월 1조2880억원, 6월 1조2980억원, 7월 2조9977억원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채권은 발행 주체인 국가, 공공기관, 기업 등이 망하지 않는 한 만기일까지 보유하면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시장 변동성이 클 때도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안전자산이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는데, 금리가 올랐을 때 저가 매수한 뒤 금리가 내리면 매도해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채권 금리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물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35%포인트 내린 연 3.079%에 장을 마쳤다. 2%대 하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3년물 국채 금리가 2%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5월 30일의 2.942%가 마지막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채권 금리도 오른다. 특히 3년물 등 단기 금리는 기준금리에 더 민감하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도 높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그동안 채권 금리는 연일 연고점을 새로 쓰며 급등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채권 금리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채권시장이 기준금리 인상보다 경기침체 가능성에 무게를 둬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경기침체가 예상되면 투자자들은 주식 등 위험자산보다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를 제치는 금리 역전 현상까지 발생하면서 경기침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시장 상황이 안정적일 경우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보다 높은 비정상적 상황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해석된다.

최근 미국 채권시장에서 2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를 웃도는 현상이 이어지자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3년물과 10년물의 금리 역전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은 10년물 국채 금리가 3년물 국채 금리보다 높게 형성돼 있지만 올해 초 0.47%포인트에 달했던 금리 격차는 이달 5일 0.045%포인트까지 급격히 줄어 사실상 비슷한 수준이 됐다.

국내 채권시장은 다른 나라의 채권시장보다 10년물 금리가 3년물보다 높아야 한다는 통념이 강하다. 이로 인해 장단기 금리의 역전 현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3년물과 10년물 금리가 역전된다면 이는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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