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이재구

최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의 엄청난 반발을 샀다. 그 와중에도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의 회장을 만나 미국 공장 설립 요청을 잊지 않았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서 삼성부터 찾고 한·미 반도체 협력 및 투자 선물을 챙긴 연장선상이다. 미국은 1984년 미·일 반도체 전쟁 이후 글로벌 반도체 분업 체제를 용인해 왔다. 하지만 중국 내 반도체 생산급증·기술 추격이 이어지자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유치에 나섰다.

우리 반도체 업체들이 이에 호응, 수십조 원 대 미국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유 중 하나로 국내 공장 설립 규제가 꼽힌다. 14년째 지지부진한 용인반도체 클러스터가 상징적이다. 그러나 삼성과 SK는 미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희망과 동시에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9일 최종 결재할 총 520억달러(약 67조5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 수혜기업은 중국 등에 10년간 반도체공장을 신·증설할 수 없다. 중국 정부의 보복 리스크는 당연해 보인다. 삼성·SK 총수는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비장할 것이다.

미국은 행정부와 의회, 지자체까지 하나가 돼 한국과 대만 반도체 공장 유치에 사활을 거는 듯 보인다. 이는 중국 견제, 반도체 공급 부족 해소는 물론 각종 첨단 제품 조립 생산기지 건설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반도체특위위원장을 맡았던 양향자 의원은 한 매체 기고문에서 "우리는 반도체 산업 관련 부처만 10개나 돼 하나의 사안을 놓고 입장과 해법이 다르다"고 말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책 <부의 미래>(2006)에서 변화의 속도에 대해 "기업은 시속 160km, 정부관료 조직은 40km, 학교는 15km, 정치조직은 5km, 법은 1.5km"라고 지적한 그대로다. 정말 이대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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