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쩨한 개혁개방 대신 큰 것 한 방
쩨쩨한 개혁개방 대신 큰 것 한 방
  • 최성재 교육문화평론가
  • 승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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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3대째 쩨쩨한 개혁개방 대신 큰 것 한 방, 젖과 꿀이 흐르는 대한민국을 노린다.∥

[안휘성 소강촌의 18농민 생사장에 붉은 손도장을 찍다]

1978년 11월 어느 저녁 중국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安徽省 凤阳县 小岗村)의 108농가 중 18명의 농민이 생사장(生死狀)에 붉은 손도장을 찍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그들은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중국 공산당의 명령을 은밀히 거부하고 그들이 집단적으로 일하던 인민공사의 농지를 몰래 식구 수에 맞춰 각 가구별로 나누어 농사짓기로 결의했다. 각 가구가 생산한 것은 각자가 갖기로 결의했다. 이를 계약제 또는 청부제라고 한다.

1979년 가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대풍이 들었다. 1978년 18가구의 총 생산은 18톤이었지만, 1979년은 무려 66톤이었다. 놀라지 마시라, 약 4배나 폭발적으로 증산되었다. 1인당 수입은 22위안에서 400위안으로 늘었다.

그로써 20년 이상 계속되던 흉년을 일시에 날려 버렸다. 너무도 가난하여 20년 넘게 국가로부터 구제 양식을 받아 연명하고 돈을 빌리고 그것도 모자라 집집마다 식구 수대로 거리에 나서서 빌어먹고 살았는데, 그해는 실컷 먹고 쓰고도 3.2톤을 국가에 헌납할 수 있었다. (2006/03/30 중국 经济日报 참조)

[등소평, 18농민에게 개혁을 배우다]

사방으로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난리가 났다. 너도나도 청부제를 도입하려고 눈이 벌개져서 설쳤다. 공산당이고 나발이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만약 다짜고짜 공산당이 개입하여 생산물을 몰수하고 주동자를 감옥에 처넣고 사상개조에 들어가, 썩은 자본주의 사상을 빛나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개조시키려고 몽둥이찜질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본보기로 현장에서 총살시켰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꼼짝 못했을 것이다. 모택동이 선문답 한마디로 3천만도 때려죽이고 굶겨 죽었는데, 그까짓 18명이야 개미새끼 밟아 죽이는 것보다 쉬웠을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1976년 학살 마왕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이 죽었다. 전쟁은 잘했지만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신은 경제도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택동이 1979년에는 천안문 광장에 초상화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1978년 말 2년의 권력투쟁 끝에 마침내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누더기 노동복을 동여 입고 자본주의 빵 크루아상(croissant)을 먹은 적이 있던 등소평(邓小平 덩샤오핑)이 권좌에 올랐다.

등소평은 기세 좋게 개혁개방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개혁은 무엇이고 개방은 무엇일까.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나타나 페레스트로이카 перестро́йка 곧 개혁과 글라스노스트 гла́сность 곧 개방을 부르짖은 건 그보다 7년 뒤의 일이다.)

골수 공산당원 등소평도 실은 개혁개방이 뭔지 몰랐다. 그것은 그냥 안철수식의 좋은 말이었다.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등소평은 고향 사천성(四川省 쓰촨성)의 속담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되뇌면서 1년간 구체적 대안 없이 헤맸다. 1979년 안휘성 18용사의 영웅담이 등소평의 귀에 들어갔다.

등소평은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개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자유를 주는 것! 농민이 국가와 계약해서 일정액은 바치고 나머지는 얼마를 생산하든 몽땅 갖게 한다. 이것이 개혁이다!

옛말 하나 틀린 게 없구나, 민심이 천심이라더니!

[등소평, 홍콩의 대륙 출신 거지들에게 개방을 배우다]

때마침 광동성의 당서기 습중훈(習仲勛 시중쉰 현 중국 최고지도자 습근평[習近平시진핑]의 아버지)이 홍콩 맞은편 심천(深圳 선전 *원래 발음은 심수)에 경제자유도시를 건설하면 중국인이 홍콩으로 몰려가지도 않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건의했다. 그것도 목숨을 건, 정치생명을 건 제안이었다.

등소평은 이것도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외국 사람이 자본과 기술을 갖고 들어와서 중국 땅에서 생산하면, 그것이 곧 중국 노동자의 몫으로 떨어지고 그렇게 해서 외국에 팔면 또 중국 상인이 돈을 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 개방이다!

[정권교체 없이는 공산권은 개혁개방이 불가능]

공산권의 개혁개방은 목숨을 건 정치투쟁이다.

공산주의는 절대 진리로서 선(善) 그 자체이고 자본주의는 절대 허위로서 악(惡) 그 자체라는 이념을 공유해야만 공산정권이 가능한데, 인간의 이기심을 조장하고 공동체의식을 말살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생산방식을 자본주의식으로 하자는 것은 곧 공산당의 무오류를 부정하는 것이자, 공산당의 핵심 이념에 대한 거센 도전이어서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세력을 갖지 않고서는 감히 주장할 수가 없다.

노동자와 농민은 공산주의가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봉건주의보다 못한 엉터리란 걸, 선무당 사람 잡는 이론이라는 걸 공산화 1년도 안 돼 알았지만, 사실상 노예 신세라 몰래 몰래 불법을 저질러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공산화 한 세대 만에 10억 인구 중에 농민 18명이 목숨을 걸고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던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했던 것이다.

때마침 중국은 권력이 교체되었고 새로운 권력층은 공산당의 기득권 못지않게 인민의 삶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18용사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 새 시대의 별로 떠오를 수 있었다.

1978년 중국의 실용주의는 1985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1986년 베트남의 응웬반린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인민이 생사의 기로에 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세력으로 하나같이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에 맞설 수 있는 집단은 전무했기 때문에 공산당 안에서 권력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는 개혁개방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지금도 개혁개방이 불가능한 스탈린·모택동 체제]

김일성 우상화가 본격화되기 전에 북한에서도 갑산파가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김일성에게 건의했지만, 그것은 이미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던 김일성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다. 잠재적 정적을 완벽하게 제거해 버리고 스탈린과 모택동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소련과 동구가 무너지면서 북한에는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세습이 이뤄졌다. 태양신에 이어 새로운 광명성신(光明星神)이 등장한 것이다. 그 후에 태양신을 빼닮은 ‘젊은 대장님’이 등장하고.

게다가 한국에 타칭(他稱) 친북좌파 자칭(自稱) 민주·민족·평등 세력이 3번째 정권을 잡았다. 이들의 핵심 세력은 민주와 민족과 평화의 이름으로 영혼 깊숙이 김일성에게 머리를 조아린 전력 때문에 공산세습에 대해 일체 비판을 가할 수 없다. 갖은 명목으로 독재유지 통치 자금을 갖다 바치기에 이전에는 급급했고 지금은 안달한다.

“이렇게 해야만 북한이 개혁개방하고 핵을 포기한다, 수구꼴통들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원칙적으로 100%, 사실상 90%를 원천징수하는 집단이 북한의 공산집단이다. 이런 자들은 절대 개혁개방하지 못한다. 기껏 생색내는 게 개혁이랍시고 70%를 바치고 30%를 가지라고 한다.

얼마를 생산하든 초과생산은 무조건 농민이나 노동자가 갖게 하는 것이 개혁의 핵심인데, 농민이든 노동자든 노예로 생각하는 자들이 그런 건 상상도 못한다.

장마당으로 겨우 입에 풀칠할 만하자마자 화폐개혁으로 몽땅 빼앗아 버리는 자들이다. 개성공단이나 해외 노동자에게서도 90% 원천징수하는 자들이다.

저들의 목표는 언제나 동일하다. 적화통일! 게다가 이제는 한국이 세계 8대 선진부국(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러시아는 인구대국일 뿐 여전히 수준 미달의 개도국)으로 올라섰다. 그걸 빼앗으면 개혁개방 100년에도 이루지 못할 것을 단 한 방에 독점할 수 있다.

군침을 흘릴 만한 게, 대한민국의 파라다이스 기적은 사오정식 내지 내로남불식 친일과 독재란 ‘독창적·절대적’ 강철 잣대로 자나 깨나 저주하고, 북한 공산왕조의 생지옥 파멸은 두루뭉술 민족(*1)과 가슴 뭉클 평화(*2)란 ‘몽환적·주관적’ 고무줄 잣대로 절대 비판하지 않는 세력이 조기 정권 교체를 달성하고 희희낙락하고 있다.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인 양 의기양양하다.

(*1 북한에선 90%가 사실상 노예인데, 한국의 열렬한 민족주의자는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한다.)

(*2 북한에선 산업의 90%가 전쟁 준비용인데, 3대에 걸쳐 2천만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게 한, 일제말 전시체제 뺨치는 공산혁명체제의 적화통일용 민족학살용 군수산업인데, 아무리 핵실험해도, 대놓고 협박하고 조롱하며 미사일을 난사해도 청와대와 여당, 국방부까지 ‘선하면 아니 올세라’ 묵묵부답하거나 ‘판이 깨질세라’ 모깃소리로 조언한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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