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응고와 뼈의 생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K가 세포의 소멸을 억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알츠하이머 등 신경 퇴행성 질환에 맞서 싸울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타민K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통해 세포의 소멸을 막는다는 사실이 국제연구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에 따라 세포 소멸로 인한 다양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새로운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독일 헬름홀츠 뮌헨 연구소의 에이간 미시마 박사팀은 독일 드레스덴공대, 일본 도호쿠대학, 캐나다 오타와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타민K의 기능을 규명한 연구논문을 유명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논문에 따르면 비타민K는 지금까지 혈액의 응고와 뼈의 생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녹황색 채소와 해조류, 식물성 기름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으며 부족하면 지혈 장애, 뼈 손실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몸 안에서 자연 생성되기 때문에 특별히 섭취에 신경 써야 하는 비타민은 아니었다. 또한 체내에 축적되는 지용성 비타민이라 과도하게 쌓이면 오히려 혈전이 생겨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연구팀은 공동연구를 통해 비타민K가 완전히 환원(산화된 물질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되면 강력한 항산화제로 작용해 페롭토시스(ferroptosis)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페롭토시스는 철(Fe) 의존성 세포 사멸을 뜻하는데 페롭토시스가 진행되면 세포막이 파괴된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脂質)이 철로 인해 과산화하는 탓이다.

의학계는 이런 페롭토시스가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 퇴행성 질환이나 급성 장기 손상 등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비타민K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연구팀은 비타민K를 환원시키는 단백질도 찾아냈다. ‘FSP1’이라는 와파린 내성 효소가 그 주인공이다. FSP1은 ‘페롭토시스 억제 단백질1(ferroptosis suppressor protein-1)’의 머리글자로 2019년 연구팀에 의해 처음 존재가 드러났다.

당시에는 FSP1이 보조 효소 ‘Q10’을 하이드로퀴논으로 환원시켜 페롭토시스가 억제된다고 판단됐다. 그런데 하이드로퀴논이 아닌 완전히 환원된 비타민K이 페롭토시스를 억제한다는 게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FSP1이 비타민K를 비타민K 하이드로퀴논으로 환원하고 이것이 지방 친화성 항산화제로 작용해 활성 산소를 차단하는 메커니즘이다. 혈액 응고 방지제의 하나인 와파린에 내성을 보이는 ‘비타민K 환원 경로’가 FSP1의 관여로 작동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FSP1 효소를 둘러싼 베일이 벗겨지면서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비타민K 대사의 마지막 수수께끼도 풀렸다. 특히 이는 페롭토시스 연구와 비타민K 생물학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헬름홀츠 뮌헨 연구소의 마르쿠스 콘래드 박사도 "이번 연구성과는 페롭토시스와 관련된 질환을 치료할 혁신적 전략을 개발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연구팀은 또 페롭토시스가 가장 오래된 세포 소멸 형태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비타민K가 자연에서 생성되는 가장 오래된 유형의 항산화제일 수 있다는 가설도 세웠다. 이와 관련 콘래드 박사는 "추가 연구를 통해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비타민K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새로운 측면이 밝혀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