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원가성 요구불예금 감소로 은행의 조달비용이 늘어나면서 코픽스 상승에 따른 대출금리 급등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은행의 대출 안내문 모습. /연합
저원가성 요구불예금 감소로 은행의 조달비용이 늘어나면서 코픽스 상승에 따른 대출금리 급등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은행의 대출 안내문 모습. /연합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이 정기 예적금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은행권의 고금리 경쟁으로 정기 예적금의 금리가 오르면서 자금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금자가 언제든 자금을 넣고 뺄 수 있는 요구불예금은 수신금리가 연 0.1% 수준에 불과한 저원가성 예금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조달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공짜예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저원가성 요구불예금이 줄고 고금리의 정기 예적금 비중이 늘어나면 은행의 조달비용, 즉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코픽스는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등의 변동금리를 산정하는 지표인 만큼 대출자들의 이자부담 증가는 불가피하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88조3442억원으로 전월보다 37조3367억원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712조4491억원으로 전월 대비 27조3532억원 증가했다. 정기적금 잔액도 6524억원 늘면서 38조1167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들이 수신금리를 올리면서 정기예금 금리는 3%대로 뛴 상태다. 여기에 인터넷은행, 저축은행과의 ‘파킹통장’ 싸움도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고금리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파킹통장은 잠시 목돈을 보관해두는 용도의 통장을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이자율이 높은 입출금 통장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은행들의 고금리 경쟁은 자유적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매월 납입할 금액과 만기를 정해 정기적으로 돈을 넣는 것이 정기적금이라면 자유적금은 만기만 정한 상태에서 금액이나 횟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입금하는 상품이다. 자유적금은 자동이체를 신청할 경우 0.2%포인트의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1년 만기 상품은 최고 연 3.5%, 3년 만기 상품은 최고 연 4.0%의 금리가 제공된다.

이처럼 저원가성 요구불예금은 줄고 정기 예적금이 증가하면서 대출금리의 지표가 되는 코픽스는 재차 급등할 전망이다. 코픽스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SC제일·기업·씨티은행 등 국내 8개 시중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다. 은행이 실제 취급한 정기 예적금 등 수신상품의 금리와 은행채 등의 시장금리가 인상되거나 인하되면 이를 반영해 상승하거나 하락한다.

지난달에도 코픽스는 정기 예적금의 수신금리 인상에 영향받아 급등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2.38%로 전월보다 0.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코픽스 공시를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이처럼 변동금리의 준거가 되는 코픽스가 오름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같은 폭 만큼 뛰었다.

오는 16일 공시될 예정인 7월 코픽스도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13일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이를 기반으로 정기 예적금 금리를 최대 0.9%포인트 올린 상태다.

오는 25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는 기준금리가 추가로 0.2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5%가 되고,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최대 4%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저축은행에서는 4%대의 정기예금 상품이 나오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이달 초 1년 만기 기준 연 4.35% 금리를 제공하는 정기예금 상품을 출시했다. 앞으로 시중은행의 수신금리가 더 오르면 정기 예적금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또한 이는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대출금리 역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6월 시중은행의 혼합형(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28~6.61%로 최고금리가 7%에 육박했다가 금융당국의 ‘이자장사’ 경고에 지난달 5% 후반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최근 시장금리 상승 등 조달비용 증가로 다시 6%선을 뚫을 기세다.

특히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등 코픽스가 준거가 되는 변동금리 상품으로 대출을 받은 차주는 더욱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기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신규 취급액 기준 81.6%, 잔액 기준 78.6%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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