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김대호

윤 정부의 말·행동·조직문화는 관료적 특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료는 세밀한 업무분장과 법령·지시·관행이라는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정부 조직의 일원이다. 자기 책임 영역(범위)을 확실히 수비하는 것이 사명이다. 다른 부처나 수석실 영역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이 미덕이다.

관료는 기본적으로 수비 부대이지 공격 부대가 아니다. 공격은 꿈과 비전을 창조하여 멋지게 포장해 파는 것이다. 정치가·사상가·운동가와 달리 관료는 작은 것 하나라도 성과를 내는 것을 중시한다. 관료는 법과 원칙에 따라 자신의 방침과 정책을 군더더기 없이 말해야 한다.

1945년 해방 직후 미국 맥아더 포고령과 소련 차스차코프 포고문은 관료=군인의 말과 선전선동가인 정치군인의 말이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준다. 맥아더는 지극히 법적·사무적·관료적으로 얘기했다. "본관은 한반도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과 조선 인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건을 발표한다." 하지만 차스차코프 측은 지극히 정치적·시적(詩的)으로 얘기했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소련의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마련해 줄 것이다."

윤 정부의 말은 맥아더와 닮았고, 문 정부의 말은 차스차코프와 닮았다. 물론 점령군처럼 말한 미국은 자유와 문명 세계를 가져왔고, 해방군처럼 말한 소련은 노예와 야만 세계를 가져왔다. 그런데도 이 말 때문에 지금껏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선동이 먹히고 있다. 윤 정부는 당·정·대 핵심들의 경험과 이력의 특성·관성을 의식해, 매사에 정치적 ‘구라’ 개발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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