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커크
도널드 커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한은 미국인들이 대부분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을 일깨웠다. 대만해협에서 실제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은 동맹국 한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리란 현실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지키는 것 외 다른 의도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미군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과 괌의 미군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서글픈 사실이 펠로시의 짧은 방한으로 명백해졌다. 공항 의전은 없었고,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일행이 비무장지대로 가기 전 40분 통화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불가피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국회 과반의 더불어민주당 세력이 윤 대통령의 한미관계 회복 노력을 반대하고 있으며, 펠로시 의장 역시 한국의 민주당 정도는 아니지만 보수 성향은 아니다. 따라서 공식적 차원에서 한국정부가 일정부분 냉정한 입장을 보인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펠로시 의장은 시진핑 주석의 경고를 무시한 대신 중국에 대해 날선 발언을 하지 말라는 사전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만이 중국에 맞서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 한국의 진정한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의견을 나누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중국의 이번 무력시위로 미뤄보건대, 대만해협은 계속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에 더 좋은 무기가 확보돼야 하고, 미국은 대만 방어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 또 대만은 독립을 훼방할 국내 친중 요소들을 제거하며 더 효과적으로 자국민들을 통합해야 할 것이다. 훌륭한 무기 제조국·수출국인 한국은 소총에서 탱크에 이르기까지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쉽진 않을 것 같다.

주한미군 기지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미의 의견 차이가 불안감을 키운다.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의 최대 해외 기지다. 주한 미군 2만85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인근 오산공군기지는 미 7공군의 본거지이자, 오키나와 주일미군 5만 명의 제5공군 카데나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다. 한국·대만 모두 근면한 자본주의 국가, 혼란 끝에 대의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한국은 대만 수호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펠로시 의장의 방한 당시 한국정부와 거대 야당은 최대 무역 상대국 중국을 신경쓰느라 대만 방어에 무심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대만의 전쟁이 한반도로 확장될 가능성을 한국은 가장 우려한다. 국경을 넘지 않는 선에서만 미국과의 동맹을 지키겠다는 태도로 비친다. 반면 일본은 전혀 다르다. 대만을 두고 중국과 맞설 의향이 있다. 대만인들 또한 한국인들과 달리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착취당한 처절한 기억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겐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로 중국 미사일 다섯 개가 떨어졌다. 일본 최남단 센카쿠 열도에서 겨우 200k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오키나와 현에 속하지만 대만에 훨씬 가깝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 수호 의지가 강하다. 진정한 위험은 대만에 대한 일본 한국의 입장차가 한·일 양국을 지금보다 훨씬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보수파에겐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이 절실하다. ‘대만 유사 시’야말로 헌법 개정의 가장 구체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대만 유사 시 한국이 미국·일본 편에 서기를 거부함으로써 아시아 자유 방어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 이게 펠로시 의장의 방한을 통해드러나 씁쓸한 교훈이다. 펠로시 의장의 행보가 미국의 동맹국 한국에 대한 시험대였음을 외교관 및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은 간과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익 우선’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의 관심이 미국·일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보여줬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