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서 中 배제

미국 상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차전지 등 배터리 전문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2’의 모습. /연합
미국 상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차전지 등 배터리 전문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2’의 모습. /연합

중국을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서 축출하기 위한 미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배터리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배터리 3사는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지 생산을 주문하고 있는 법안의 내용을 미뤄 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발목이 잡힐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셈이다.

미국 상원은 7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지난 2005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차 산업 등에 3690억 달러(약 480조원)를 투자하고, 재원 마련을 위해 대기업에 법인세 15%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미국 중심의 전기차 산업 지원책이 포함돼 있다. 소비자들에게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이는 사실상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재편을 강제한 것으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2024년부터는 리튬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40% 이상 조달해야 한다. 이후 매년 10%씩 올려 2027년부터는 핵심 광물 80% 이상을 사용해야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중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하고 있는 전기차 제조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제조 상위 10개 업체 가운데 6개가 모두 중국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렴한 가격과 대규모 물량 공세에 힘입어 시장점유율을 56.4%까지 끌어올린 탓이다. 이 가운데 중국 CATL은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34.8%를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니켈 등의 70% 이상을 중국이 생산하고 있어 대체 공급망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난제다. 현재 칠레·호주·아르헨티나 등 세계 3대 리튬 매장국 가운데 호주를 제외한 어느 국가도 미국과 FTA를 맺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다른 국가들 역시 중국산을 대체할 정도의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중국은 남미·아프리카 국가를 상대로 공격적 자원외교를 통해 전 세계 리튬을 쓸어 담고 있다. 중국은 지난 2월 국영기업인 중광자원을 통해 짐바브웨 비키타 리튬 광산 지분의 74%를 1억8000만 달러(약 23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화유코발트가 4억2000만 달러를 들여 리튬 광산업체 프로스펙트리튬짐바브웨를 인수했다.

문제는 또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리튬 가격도 미국의 배터리 공급망 재편 계획에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지난 3월 기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가격은 톤당 9100만원을 기록했다. 올해만 400% 급등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업계에서는 당장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존 보첼라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AI) 회장은 "불행하게도 전기차 보조금 지원 요건의 제한으로 대부분의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금 당장 중국산 배터리를 대체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자기고백에 다름없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 배터리 3사는 이미 GM·포드·스텔란티스 등 현지 완성차업체와의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핵심 광물에 대한 우리나라 배터리 3사의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배터리 핵심 광물인 수산화리튬의 경우 81%, 산화코발트와 황산망간은 중국 의존도가 87.3%, 100%에 달한다.

보조금 지급 대상이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적용된다는 조항도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아이오닉5, EV6 등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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