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과연 중국의 일부인가 (하) 본토화(Taiwanization)

궁극적으로 '본토화'는 독립주권국가 '대만공화국'을 지향
'독립' '현상유지' '兩岸통일' 3가지 여론이 존재하지만...
'대만은 대만, 중국이 아니다'는 고유 정체성이 보편적 의식

대만 민주화 이후의 역대 총통들. 왼쪽부터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1950~),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1950~),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1956~). ‘대만은 대만, 중국이 아니다’라는 대만 고유의 정체성이 대만인들의 보편적 의식이다. 다만 국가적 뱡향성을 두고 ‘대만독립’ ‘현상유지’ ‘양안통일’, 세 가지 여론이 공존한다. 국제정세와 양안관계 긴장 수준에 따라 각각의 지지도는 크게 출렁인다. ‘독립’ 지지가 가장 높지만, 다수의 암묵적 지지는 ‘현상유지’ 쪽이다. 적지만 ‘하나의 중국’ 지지도 존재한다. /중국 바이두 제공
중화민국의 정식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 약칭 ‘청천백일기’다. 1912년 신해혁명 직후엔 푸른 부분뿐이었며, 현재 모습은 1928년 장제스가 창안했다.

대만은 작지만 다채롭고 복잡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유세계의 동반자’, 냉전시대 대결구도의 주요 축이 한반도였듯 신냉전 구도 속에서 대만이 핵심 고리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이 구도의 강력한 자장(磁場) 안에 있다.

미국·일본과 더불어 우리의 생존·번영에 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 대만을 바라봐야 한다. 1990년대 이래 대만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대만화’일 수밖에 없었다. ‘본토화’(Taiwanization), 즉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땅’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본토’라는 인식이다. 첫 본성인 출신 총통 리덩후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행사 가능한 범위와 헌법의 영토 규정(한반도 및 부속 도서)에 차이가 있듯, 대만도 비슷하다.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1950~),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1950~) 정부를 거쳐 다시 민진당 차이잉원(1956~) 총통이 재임 중인 현재, 그 동안 교과서의 일부 기술 내용이나 명칭이 오락가락 했으나 한 가지 뚜렷한 변화가 있다. 더 이상 ‘수도 난징(南京)’ ‘인구 14억’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중공’ ‘대륙’이라 부르던 중화인민공화국을 그냥 중국이라 칭하는 경향이 늘었다. 아예 ‘외국’ 취급하자는 의식의 반영이다.

본토화는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대만독립: 臺獨)을 말한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두 개의 중국’을 말한다면 엄밀한 의미의 ‘臺獨’이 아니다. 물론 온건 독립론자 중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중화민국이라는 허구의 국명을 탈피해 신헌법에선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될 만한 요소, 국명·국장(國章) 등을 완전 삭제해야 한다." 리덩후이의 2006년 발언이다. "대만과 중국(대륙)에 각각의 나라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한 그의 ‘양국론’ 역시 본토화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궁극적으로 본토화란 독립주권국가 ‘대만공화국’을 지향한다. 중화민국을 부인해야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내지 중화 그 자체와 단절하지 않으면 ‘하나의 중국’ 논리를 극복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대만인들이 중국인과 동일시되는 것을 불편해 한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강경 독립론자는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어떻게든 분리만 돼 있다면 (미승인국 처지 외) 현 체제에 큰 불만 없는 게 사실상 보편 정서다.

대만엔 ‘독립’ ‘현상유지’ ‘양안통일’, 세 가지 여론이 존재하지만 각각의 지지도는 자주 출렁인다. 그 중에서 2006년 이래 가장 높은 지지도가 ‘독립’인데, 압도적이진 않다. 독립 여론은 친중 성향의 마잉주 정권 시절 크게 줄었다가, 2020년 세계적 반중정서 속에 다시 54%로 올랐다. ‘통일’ 지지 역시 10% 정도 꾸준히 나온다. ‘현상유지’ 쪽은 20% 내외를 왔다 갔다 하지만 암묵적 지지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가장 많을 수 있다.

1949년 국민혁명군(이후 중화민국 국군)이 상륙했을 땐 대만인들 기대가 컸다. 일제시대를 참혹한 시간으로 기억하진 않는다 해도, ‘제국의 2등 신민’ 보다 나은 신분과 처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만을 접수한 중화민국 국민당 정권은 현지인(본성인)들을 ‘매국노’ ‘일제 앞잡이’ 취급을 했다. 1912년 성립 이래 중화민국의 지상과제는 근대화였고, 1930년대 이후엔 항일민족주의를 통한 ‘국민만들기’(nation-building)가 진행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본성인들, 대륙에서 온 외성인 지배자들이 기본적으로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중화민국 표준어(國語)인 북방 중국어와 대만의 토착어(민남어 계열)는 어순이 유사할 뿐 대단히 이질적이다.

대만어·일본어에 익숙한 본성인들은 국민당 정권에 저항했고 이를 대거 학살한 게 2.28 사건이었다(현 ‘평화의 날’). 최소 2만8000명에서 4만에 달하는 본성인이 희생당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당 정권의 일당독재는 뿌리를 내렸고 국민당과 함께 들어 온 소수의 외성인들이 대만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됐다. ‘國語’ 이외의 언어는 탄압을 받았다. 일제시대보다 불편하고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주체의식, 정체성이란 외부적 충격 속에 싹트고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게 ‘대만인은 대만인, 중국인이 아니다’로 요약된다. 여기서 중국인이란 중화민국도 중화인민공화국 소속도 아니다.

대만의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 유엔 가입이란 1971년 상실한 회원국 지위 ‘회복’이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겐 ‘대만’ 국호로 새로 가입하는 것이다. 대만을 ‘중화민국’이란 국호를 가진 독립국가로 간주해 달라는 주장도 있다(여기서 중화민국은 대륙을 뺀 개념). 이것이 화독(華獨: 중화 독립), 즉 독립이나 통일이 초래할 부담 속에서 나온 타협점이다.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더 부여한 표현인 ‘대륙 독립’(陸獨) 논리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으로부터 분리해 나갔다는 시각이다. 강경 독립파인 ‘범록(汎綠: Pan-Green Coalition)연맹’이 기존 입장을 완화한 게 華獨이라면, 陸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존을 인정한 국민당 중심의 ‘범람(汎籃: Pan-Blue Coalition)연맹’이 ‘하나의 중국=중화민국’ 입장을 수정한 결과다. 양자가 정반대의 관점에서 유래한다.

한편 2016년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는 국내적 명칭 ‘中華民國 臺灣’과 대외용인 ‘Republic of China(Taiwan)’을 채택했다. 따라서 국가기관 영문명들도 달라졌다. 종래의 독립파보다 온건한 자립 노선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인 다수의 지지 내지 암묵적 동의(양안 간 현상유지) 입장에 가깝다. 2020년 공개된 새 여권 표지 또한 REPUBLIC OF CHINA를 작은 글씨로 국장 테두리에 넣어 ‘TAIWAN’이 눈에 잘 들어오게 바꿨다. 범록연맹 일각에서 China를 지우고 음역 Republic of Chunghwa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中華民國’ 한자를 그대로 둔 채 Republic of Taiwan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다.

국민당은 여전히 중국(중화민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의 집권세력으로 국민당을 반긴다.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발전하면서 중화민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역사관이지만, 당 對 당 자격으로 국민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한다. ‘친중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는 말이 내부적으로 나올 정도인 국민당이 여전히 대만의 양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1996년 총통 직선제 이래 ‘통일 지향의 국민당’ ‘독립 지향의 민진당’이 번갈아 집권했으며, 입법원(국회)이나 지방선거에서도 어느 한 쪽이 독식하진 않는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젊을수록 그렇다. 동시에 범람연맹 노선은 갈수록 ‘중공 스파이’로 공격당하는 추세다.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과 실질협력을 계속 증진한다"는 게 대한민국 공식 입장이다. 2012년 미국이 대만을 비자 면제 프로그램 적용국에 포함시킨 것은 대만을 사실상 별개 국가로 간주한 상징적 조치다.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 당선 직후 미 국무부가 환영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이 재집권해 ‘하나의 중국’ 존중 정책에 큰 변화가 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실질적인 미국대사관 역할을 해온 AIT(美國在臺灣協會) 역시 대만독립 국민투표 실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 또한 1972년 중일 수교 이래 대만과 비정부 관계만 유지한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교류, 대만에 대한 정서적 논리적 밀착도는 세계 으뜸이다. 일본 재무장의 최대 명분을 ‘대만 유사 시 대응’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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