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덕
박상덕

얼마 전 저선량 방사선 치매 치료에 도전하고 있는 정원규 교수를 만났다. 강동 경희대병원 방사선 종양학과 주임교수이면서 치매 치료 전문 스타트업 레디큐어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동안 먹는 치매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었지만 아직 근본적인 치료보다는 증상의 완화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수준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문제점이 있다. 일반적인 약물은 뇌를 보호하고 있는 혈액뇌장벽(BBB, 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하기 힘들어 뇌 병변 부위로 약제를 전달하기가 힘들지만, 방사선은 혈액뇌장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기에 뇌 병변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원리이다. 더구나 저선량 방사선 치료는 통증도 없고 치료 시간도 약 5분 정도로 환자 편의가 크게 높아진다. 방사선 치매 치료는 부작용도 없고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에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정 교수가 치매 치료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미국 윌리엄 버몬트 병원에서 발표한 내용 때문이었다. 치매 모델 쥐의 뇌에 저선량 방사선을 조사했더니 베타 아밀로이드 프라그(Amyloid Beta Plaque)라는 치매 유발 단백질 덩어리가 줄어들었다는 논문이었다. 이후 정원규 교수와 건양의대 문민호 교수, 김수진 학생 연구팀은 저선량 방사선 치료를 받은 치매 쥐가 대조군보다 시냅스 퇴행, 신경 손상 등 신경 염증을 억제하고 미세아교 세포 수와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베타 아밀로이드 프라그로부터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효과도 확인했다. 이 내용은 2020년 5월과 6월에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일본 슈지츠(Shujitsu) 대학교의 슈도 스지오 교수도 저선량 방사선은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항상성 유지 활동을 자극해서 치매 치료는 물론 암과 염증 치료에도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중국 창춘에 있는 지린(Jilin)대학병원 중심의 연구자들이 ‘저선량 방사선은 암 치료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떠오른다’는 논문을 국제암전문지(Internal Journal of Cancer)에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방사선요법은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태워 죽인다는 종래의 생각이 아닌, 전신 또는 상반신에 저선량을 일정하게 조사하여 면역력의 증강이나 비정상 세포의 자살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저선량 방사선은 고선량 방사선과 특성이 달라 우리 몸에 유용하게 작용한다는 의미이고, 정교수가 추진하고 있는 치매 치료도 같은 원리에 기반한다.

작년 6월 충북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서영석 교수와 공동 연구팀은 저선량 방사선을 이용한 치매 치료 동물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 퇴행성 관절질환 등에 저선량 방사선 치료를 시행해 항염증 효과를 본 데서 착안해, 보통 암 치료에 쓰이는 방사선량을 1/20로 줄여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쥐에 적용했다. 3년간 진행한 연구에서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쥐의 뇌 조직에서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원에서는 오래전에 초파리를 이용한 저선량 방사선 실험에서 인지기능 개선 가능성을 확인했었다. 저선량 노출 초파리에서 발굴한 다수유전자들은 저선량 방사선에 의해 수명증가가 일어나는 유전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밝혔고 학술지에 게재했었다.

지금 방사선보건원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소규모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책임자가 정원규 교수이다. 시험대상자는 60세 이상 85세 이하의 경증 및 중등증(mild to moderate)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60명이 참여하게 된다. 본 임상실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 대규모 임상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종국에는 저선량 방사선을 이용한 치매 치료나 예방의 신기원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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