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쏘카가 상장을 철회하지 않고 예정대로 증시에 입성한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박재욱 대표. /연합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쏘카가 상장을 철회하지 않고 예정대로 증시에 입성한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박재욱 대표. /연합

유동성 장세에 힘입어 지난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뜨거웠다. 87개 기업이 기업공개에 나섰고, 공모 금액만 19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 기업공개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상장 당일 공모가의 2배에 시초가를 형성한 후 상한가까지 오르는 ‘따상’을 기록한 기업도 15개나 됐다.

하지만 연초부터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올해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매입희망 규모와 가격을 제시하는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경쟁률이 100대 1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어(大魚)로 꼽히는 스타트업 유니콘의 공모가 역시 희망 공모가 밴드의 하단을 밑도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쏘카가 대표적이다.

쏘카는 지난 2011년 설립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량 공유 스타트업으로 카셰어링이 주력 사업이다. 카셰어링은 차량을 예약하고 자신의 위치와 가까운 주차장에서 차량을 빌린 후 반납하는 서비스다. 주택가 등에서 시간 단위로 대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렌터카 사업과 차별화된다.

이 같은 유망사업과 비전으로 쏘카는 장외시장에서 조 단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스타트업 유니콘으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증시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쏘카는 지난 9일 최종 공모가를 2만8000원으로 확정했다. 희망 공모가 3만4000~4만5000원보다 17~38% 낮은 수준으로 최종 공모가가 희망 공모가 하단보다 낮다.

공모 규모도 1547억~2048억원에서 102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확정 공모가를 기준으로 한 시가총액은 1조원에 못 미치는 9000억원대다. 쏘카는 당초 1조6000억원까지 몸값을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처럼 공모가가 낮고 규모까지 줄어든 것은 수요예측 결과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지난 4~5일 진행된 쏘카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56.07대 1이다. 유망한 스타트업의 수요예측 경쟁률이 통상 1000대 1 이상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흥행에 실패한 셈이다.

쏘카의 수요예측에는 총 346곳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했는데, 이들 가운데 80%가 쏘카의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의 하단 미만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증시 부진으로 기업공개 시장의 열기가 식은 가운데 공모가의 고평가 논란 등이 맞물리며 기관투자자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어느 정도 예견됐음에도 쏘카가 기업공개를 연기하지 않고 강행한 것은 운영자금 때문이다. 쏘카는 전동식 킥보드와 전기스쿠터 등의 마이크로모빌리티 확대, 주차 플랫폼 및 카셰어링 서비스 고도화 등을 추진 중이어서 ‘실탄’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앞으로의 증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도 쏘카가 코스피 상장을 밀어붙인 배경으로 꼽힌다. 금리 상승으로 시장의 돈줄이 마르고 있는 상황인 만큼 투자자들 역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처럼 미래가치를 앞세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기업보다 당장 눈앞의 실적을 낼 수 있는 소재, 부품, 장비업체가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장외시장의 거품이 빠지는 단계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촉망받는 스타트업들은 증시에 상장하지 않더라도 벤처캐피털을 통한 서너 번의 투자유치를 거치며 기업가치를 높여왔다. 사업 경쟁력 강화, 실적 개선 같은 핵심 요소와 무관하게 투자유치만 연거푸 받아도 기업이 진화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 벤처캐피털 부문까지 얼어붙으면서 더 이상 이 같은 ‘꽃길’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스타트업 유니콘이 기업공개 시장에서 외면받는 상황이 되면서 현재 상장 심사 중인 컬리 역시 몸값에 대한 ‘눈높이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컬리는 온라인 장보기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유니콘이다.

컬리는 오는 9월 5일부터 가전제품의 통신판매중개서비스에도 나설 계획이다. 플랫폼 중개를 통해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는 기업공개를 앞두고 실적을 개선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쏘카의 이번 결과가 다른 대어급 스타트업 유니콘의 기업공개, 특히 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며 "상장을 원하는 기업은 당분간 보수적인 측면에서 공모가를 책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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