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투표장에 온다: 청년정치
90년대생이 투표장에 온다: 청년정치
  • 강지연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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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 치기어린 계몽주의 같아. 책 읽고 세상 재단하기보다 사회서 배우겠다는 자세부터

-세대교체? 청년정치인에 나라 맡겨선 안된다 확신. 타 영역 전문성 쌓는 청년이 오히려 희망

-586은 계급적. 왜 한 세대 독점하나? 민주화 운동했다고 세상 고생 다 한 것처럼 으스대

1994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자랐다. 부모님도 충청도 출신. SKY 대학 중 한 곳에서 인문사회계열 학부에 재학 중이다. 586을 싫어하는 중도 성향. 편의상 U로 칭함.

나 : 요새 유행하는 ‘청년 정치’에 대한 생각은?

U : 솔직히 별로 맘에 안 듭니다. 전 이상한 애들이 이상한 데로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치권에 가서 이상해졌다기보다 그냥 이상한 애니까 그리로 가는 거 같아요.

청년 정치라 하면 ‘좀 사는 집 도련님들의 자의식 배설’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일반 사람들의 삶과 유리된 상태에서 옹알이하는 걸 듣는 기분이에요.

나 : 구체적으로 어떤 때 그런 느낌이 드는지?

U : 청년보수 쪽은 주로 자유 시장경제를 열심히 얘기하죠? 자유시장경제 자체는 좋아요, 한국은 신자유주의 해서 문제가 아니라 그것도 제대로 안 해서 문제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도 가요.

그런데 제가 싫은 건 이 친구들의 치기 어린 계몽주의에요. 저한테는 마치 “깨어 있는 우리들이 근본부터 틀려먹은 조센징 민족성을 개조하겠다”는 것처럼 들려요. 책 몇 권 보고 세상을 재단하는 느낌이랄까? 기성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훈련 코스와 기회를 주고 “니들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라고 숨통을 틔워주든지, 아니면 링 밖에서 선동가가 나와서 뒤집어 엎든지 해야 될 것 같아요.

◇청년정치인, 세상을 알고 떠드나 싶어

U:세상을 알고 떠드나 싶고요. 저는 먼저 사회에서 배우겠다는 자세, 내가 접하지 못한 영역과 그 영역에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걸 제대로 인식한 사람들을 좀 보고 싶어요.

그래도 차라리 안보를 내세우면 그나마 나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녹색당 신지예 같은 진보쪽 비주류로 가면 여긴 체계도 뭐도 없는 동아리 느낌? 헌신성은 인정해 드리는데 세상이 그런 거로만 돌아갈 순 없잖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체계적인 틀이 있어야 하고 현실 감각을 갖춰야 하잖아요.

기본적으로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의미 없는 노래에 맞춰 의미 없는 율동을 하면서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식인 게 꼭 교회나 종교단체 느낌도 나고요.

실제로 몇 번 접해본 적도 있는데 얘네는 ‘머릿속이 꽃밭’이구나 싶어요. 좀 나사 풀린 애들도 많이 보이고요.

나: 민주당 계열 청년 정치인은?

U : 민주당은 일단 눈에 띄는 청년 정치인이 있기나 한가요? 다들 어르신들 시다바리나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민주당 계열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얘들은 완전히 ‘복사 붙여넣기’더라구요. 주요 쟁점으로 들어가면 자기 생각은 하나도 없이 기존 586 주장을 되풀이하는 거 보면 같은 90년대생 맞나 싶고 실망스럽죠.

나 : 정치의 세대교체 주장이 거센데?

U : 저는 세대 적체가 정말 불만스럽지만 지금 청년 정치인이라는 애들한테 나라를 맡겨선 안 되겠다는 확신은 듭니다. 우리 세대에서 가장 믿음직한 청년들은 정치에 전혀 기회가 없다는 걸 일찌감치 캐치하고 다른 영역으로 진출해서 전문성을 쌓고 있는 친구들이 아닐까요?

기성 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훈련 코스와 기회를 주고 “니들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라고 숨통을 틔워주든지, 아니면 링 밖에서 선동가가 나와서 뒤집어 엎든지 해야 될 것 같아요.

나: 투표성향은 어떤지?

U : 문재인, 홍준표가 나온 선거에서는 문재인을 찍었고, 최근 지방선거에서는 바미당을 찍었습니다. 바미당도 안 좋아하긴 하는데, 양당 말고 다른 정당에 한 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 했어요.

나 : 지난 선거에서는 문재인을 찍은 이유는?

U : 결정적으로 탄핵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바미당을 비롯한 다른 세력들은 너무 미약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국정 안정성도 확보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문재인을 선택했습니다.

나 : 지금 심정은?

U : 문재인이 탐탁친 않았지만 응원하는 심정이었는데, 점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어요.

◇문재인, 최저임금 인상이 가장 맘에 안들어

나 : 뭐가 가장 맘에 안 드는지?

U : 최저임금 인상이요. 저희 집이 자영업을 하거든요. 부모님 두 분 모두 원래 민주당 성향이세요. 그런데 어머니는 최저임금 때문에 지금은 완전히 돌아서셨어요.

사실 저는 제가 월급을 주는 입장은 아니다 보니, 최저임금 자체가 막 와닿지는 않았어요.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제가 제일 불만이었던 건 도대체 “1만원”의 근거를 알 수가 없었던 거에요. 솔직히 그냥 외우기 좋고 머리에 잘 박혀서 만원 내지른 거 아닌가요? 컴퓨터 게임도 그거보다는 이것저것 계산하면서 할 것 같은데.

아, 그리고 형은 열렬한 자유한국당 지지자입니다.

나 : 형이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U : 군대에서 연평도, 천안함 사태를 맞는 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나 : 원래부터 중도 성향이셨는지?

U : 고등학교 때까지는 깨시민 성향이 강했죠. 21살 때까지는 진보 정당을 지지했었죠. 지금은 정치적 냉담자라고나 할까요? 정치보다 재밌는 게 많아서 예전만큼 관심이 크진 않습니다.

◇“586이라는 말 자체에 계급성이 있어요”

나 : 586을 싫어하는 이유는?

U : 일단, 586이라는 말 자체에 계급성이 있어서요. 50대 중 80년대 학번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많은데요. 저희 부모님은 둘 다 고졸이세요. 그런데 왜 그 때 대학 갔던 사람들이 한 세대의 목소리를 독점해요? 일단 그게 제일 싫어요. 민주화 운동 좀 했다고 세상 고생 다 한 것처럼 으스대는 것도 싫죠.

물론 80년대 어려웠던 시대였죠. 그 시대를 살아보진 않았지만, 물질적으로도 제 시대보다 궁핍했고 사회는 더 폭력적이었고 군사독재도 있었죠.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 먹고 사느라 바빠서 민주화 운동은 기억에도 희미한 사람들도 많아요. 이 사람들은 뭐예요? 제 고향에는, 제 친척들 중에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신 분, 어렸을 때 집에서 떨어져 식모살이 시작해서 학교는 구경도 못 하신 분들도 많아요.

◇80년대 대학 안나온 사람들의 훨씬 훌륭한 사람들

그런 분들은 80년대 안 살아본 거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게 없어요? 저는 민주화 운동 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보다는, 못 배우고 운동 안 했어도 주변에 폐 안 끼치고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 다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대단한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U: 반대로 586을 보세요. 자기 자식은 외고나 자사고에 꽂아넣고, 부동산으로 자산증식하고, 사실상 한국에서 최초로 탄생한 귀족계급이에요. 아, 혹시 오해하실까 말씀드리면 자식들 외고, 자사고 보내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고, 부동산으로 자산증식하는 게 문제라는 거 아니에요.

공부 잘 하면 좋은 학교 가는 거고 투자할 돈 있어서 자기가 리스크 감수하고 돈 버는 걸 누가 뭐라 하겠어요? 제가 싫은 건, 그런 상층 계급으로서 기득권을 누리려면 욕 먹는 것도 좀 감수하고 좀 자기들 위치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입으로는 온갖 정의를 얘기하고 대학 다니면서 데모한 젊은 시절만 주구장창 얘기하죠.

그런데 이제는 이 사람들이 자기 지위를 자식들한테 거의 세습시키려는 것 같고, 그런 와중에도 자기네들은 서민이라느니 위선 떠는 데서도 환멸을 많이 느끼죠. 물론 이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과장이 있고 편견이 있겠죠. 제가 지금까지 말한 게 무슨 데이터로 증명된 건 아니고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접한 얘기들을 통해서 이렇게 느끼고 있는 걸 뭐 어쩌겠어요.

나 : 그건 U씨 친구들의 일반적인 생각인가요?

U : 부모님이 대학을 안 나오셨고, 제 자신이 지방 출신이라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저 혼자만 한 건 아니고, 지방에 변변치 못한 출신에 ‘인서울’로 온 애들끼리 비슷한 얘기 많이 하긴 해요.

나 : 보수, 진보 중 어느 쪽 성향인지?

U :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수, 진보의 기준이 한국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보수, 진보로 나누기 보다 그저 지지정당에 따라 자유한국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로 나누는 게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저는 두 정당 모두 지지하지 않습니다.

◇586의 서민흉내, 부의 세습에 환멸 느껴

나 : 세계적인 진보/보수 기준이 한국에서 잘 맞는 않는다는 것은 어떤 뜻?

U : 보수와 진보는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변화를 꾀하느냐,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느냐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진보는 양 진영 모두 수구적인 느낌이 강하죠. 한국의 보수는 현대 사회의 발전상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안전망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인 점이 그렇죠. 선진국 보수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몸을 사립니다. 한국의 진보는 한때는 진보적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원자력 발전 이슈를 생각해볼까요? 에너지 문제, 탄소배출 절감, 미세먼지 문제 해결 등을 걸고 잔뜩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건 진보일까요, 아닐까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적극적 변화를 외친다는 점에서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진보 진영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 하면 무조건 보수적이라는 소리 들을 겁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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