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변되는 K-반도체 산업이 당초 예상을 깨고 올 4분기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겨울에 지구온난화가 찾아왔다." 지난 8월 ‘겨울이 오고 있다’는 제하의 보고서로 올 3분기 이후 D램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하락과 수요 침체에 따른 세계 반도체 시장의 다운사이클을 예견했던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최근 자신의 전망을 수정하며 내뱉은 말이다.

당초 대다수 시장분석기관과 증권가의 의견 역시 모건스탠리와 궤를 같이 했다. 한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반도체 산업의 이 같은 업황 악화는 국가적으로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반도체 경기는 급격한 다운사이클을 피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컨센서스를 상회하는 호실적으로 올해를 마감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21일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이를 증명하는 듯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각각 1위와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43.9%, SK하이닉스 27.6%로 합산 점유율이 71.5%에 달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41.0%에서 올 1분기 41.2%, 2분기 43.2%, 3분기 43.9%까지 3개 분기 연속 점유율을 높이며 메모리 최강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는 양사의 견조한 성장이 4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 20일 삼성전자의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9조600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D램 출하량이 분기 기준 역대 최대였던 올 3분기(10조600억원)에 견줄만한 실적이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도 4조3600억원 규모로 상향했다. 직전 분기 4조1700억원보다 4% 증가한 수치다.

이수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축인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 하락 폭이 기존 예측보다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3·4분기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서버용 반도체 수요는 탄탄하게 유지됐다. 최대 반도체 수요시장 중 하나인 노트북·스마트폰의 코로나19 특수가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로 귀결된 것도 실적 하락의 저지선이 됐다.

이와 관련, 20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D램 제조업체 마이크론의 분기(9~11월) 실적이 월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어닝 서프라이즈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마이크론은 이날 전년 동기 대비 33% 늘어난 76억9000만달러(약 9조1600억원)의 분기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또한 21일 관세청은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5% 확대됐다는 집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양사의 글로벌 반도체 리더십에 힘입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17.3%에서 올해 19.7%까지 상승했다"며 "반도체 산업이 올해 1~3분기 경제성장률 4% 중 약 1.1%포인트(p)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전망도 긍정적이다. 서버용 반도체 수요와 스마트폰 생산량 증대에 더해 올해 하반기의 최대 리스크로 꼽혔던 D램 가격 하락세가 멈추면서 업사이클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앞다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실적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양사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58조5000억원, 14조85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KB증권도 지난 16일 내년 D램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요가 올해보다 크게 증가함에 따라 상반기 중 업황이 바닥을 찍고 턴어라운드 기조에 돌입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대응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선제적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술 리더십 유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로 올라선다는 목표 아래 총 171조원의 돈뭉치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올해만 평택 2공장, 평택 3라인, 미국 텍사스주 신규 파운드리 생산라인 등의 투자를 진행 또는 확정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세계 최초의 3나노 공정 양산에도 돌입한다. SK하이닉스도 지난 2월 이천캠퍼스 M16 팹에 초미세 공정의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처음 도입한 이래 오는 2025년까지 EUV 구입에만 약 4조7500억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기술 경쟁력 극대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초미세 공정의 핵심 설비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초미세 공정의 핵심 설비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의 M16 팹 준공식에서 미래 반도체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M16 팹에는 SK하이닉스 최초의 EUV 노광장비가 도입됐다. /SK하이닉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의 M16 팹 준공식에서 미래 반도체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M16 팹에는 SK하이닉스 최초의 EUV 노광장비가 도입됐다. /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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