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길' 天孫文明되찾기 中의 역사 짜깁기를 넘는다
'초원의 길' 天孫文明되찾기 中의 역사 짜깁기를 넘는다
  • 김유라 역사 에디터
  • 승인 2017.12.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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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반만년 코리아인가? <>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라 부르는 까닭은? 먼저 지난 7월3일 바이칼 알혼 섬 후지르 마을 부르한 바위에서 올린 비나리 가운데 한 토막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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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바이칼 앞에 섰습니다.

3천만 년 이어온 가장 깊고 넓은

지구마을의 푸른 눈이자 하늘 못.

그 앞에서 인류를 떠올립니다.

바다가 멀어지고 얼음추위가 닥친

8만 년 앞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살아남고자 ‘아프리카의 뿔’을 떠났습니다.

2만5천 년 앞서 다시 얼음의 날이 닥치며

시나브로 황해는 압록강과 황하가 하나로 만나

큰 강으로 굽이치는 드넓은 풀밭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만 년 가까이 황해 44m 아래 풀밭은

인류문명의 첫 애기 집이 되었습니다.

간 돌로 그물추를 삼아 물고기를 잡고

밭 갈아 콩 심고 물 대어 벼를 길렀으며

빗살무늬 뾰족 항아리에 남은 걸 쟁여

집집마다 개들이 보초를 섰으니

이윽고 씨족 공동체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니

역사시대는 밀물과 함께 밀려들었습니다.

1만 년 앞서 오랜 얼음의 날이 저무니

황해는 다시 바다에 잠겼습니다.

풀밭은 저 멀리 달아나

위로는 시베리아까지 뒤덮고

몽골 초원 너머 수메르와 이집트에 이르러

기름진 초승달을 빚을 때에

아직 남은 이들은 요하를 발판으로

제정일치의 옥기문명을 일구어냅니다.

그 역사시대의 처음을 새긴 ‘초원의 길’

그 들머리에 있었던 천지가 바이칼입니다.

 

바이칼 호수, 알혼 섬, 하란츼 마을의 너른 벌판. 천지와 동해가 함께 펼쳐집니다.
바이칼 호수, 알혼 섬, 하란츼 마을의 너른 벌판. 천지와 동해가 함께 펼쳐집니다.

이제 우리는 유라시아의 길,

셋째 초원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처음 길을 낸 사람들은 옛 조선입니다.

만주와 몽골 초원을 거쳐 하늘겨레들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드나들었습니다.

그 초원의 길을 따라

바이칼은 코리아로 왔습니다.

부리야트는 북부여로, 코리는 고구려로

하늘겨레의 문명을 이어왔습니다.

强漢盛唐이란 생뚱맞은 한족의 말은

그 길을 뺏으려는 몸부림을 뜻합니다.

조선-북부여와 한의 전쟁은,

고구려-발해와 수당의 백년 전쟁은,

수천 년 이어온 유라시아 초원의 길을

만주와 몽골 초원에서 중원으로 돌리려는

문명을 건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끝내 한족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코리아 덕에 마침내 꿈을 이뤘습니다.

발해를 끝으로 코리아는 제 뿌리인

만주의 언저리로 스스로 사라졌으며

함께 유라시아의 길을 열고자 했던

몽골과 만주의 손길조차 뿌리쳤습니다.

하여 쿠빌라이가 북경에 자리 잡은 뒤로

초원의 길은 그 빛을 잃었습니다.

바이칼 또한 빛바랜 옛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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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는 초원의 길을 둘러싼 유라시아 하늘겨레의 한 갈래인 코리아의 시공간과 사람들, 그 셋을 일컬음입니다. 올해가 단기 4350년이라고 억지 올림해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비나리에서 읊었듯 2만5000년 앞서부터 황해초원에서 유라시아의 첫 문명은 샘솟았습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기나긴 ‘얼음의 날’에 인류의 조상들이 함께 이뤄낸 <모두의 문명>입니다. 얼추 1만년 앞서 바다가 차오르고 살 만해지니 초원의 길을 따라 대륙으로 바다로 문명의 거점들이 태어납니다. 이 즈음에서 한마디. 학자의 양심을 지킬 수 없는, 불쌍한 북경의 학자들이 우기는 이야기도 듣기 거북하지만 요하문명을 보면서 우쭐해 함도 한심한 일입니다.

물이 들어찬 뒤 코리아의 자리에서 먼저 길을 떠났으니 그 곳에서 문명의 새벽이 동트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명의 새벽’이 곧바로 코리아? 아니올시다. 그 문명의 새벽은 초원의 길을 함께 일구었던 하늘겨레들, 북방 유목겨레들 ‘모두의 문명’입니다. 그 샘에서 코리아가 나오려면 역사공동체의 잣대들이 엮여져야 합니다. 그 첫 ‘시간의 잣대’가 아사달입니다.(아사달을 한자로 바꾼 것이 조선(朝鮮)입니다.) 단군조선으로 불리는 아사달은 천손족(天孫-하늘겨레)이 곰과 호랑이 토템(totem)을 지닌 씨족들을 한데 엮어 세운 부족국가로 보입니다. (나중에 이 아사달은 삼한이란 연방으로 커져갑니다.)

환인 환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왜 빼느냐 할 수 있습니다. 뺄 까닭이 없습니다. 먼저 말했듯, 인류의 시간이 아닌 지구의 시간, 이 간빙기 홀로세(Holocene Epoch, 沖積世) 처음에 나타난 문명의 새벽은 초원의 길을 누빈 하늘겨레들 ‘모두의 문명’입니다. 이를테면 뒷날 거란의 요나라는 천제를 크게 올리며 고려와 적통(嫡統) 경쟁까지 벌입니다. 소손녕의 침공 때 서희의 ‘세 치 혀’ 이야기는 그저 전설일 뿐 실은 고려가 적통 경쟁에서 이겼음을 뜻합니다. ‘모두의 문명’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모두의 문명-하늘겨레 문명’을 먹고 싶어서 동북공정부터 하상주 단대공정과 탐원공정 마침내 국사수정공정까지 북경에서 엄청 애를 쓰는데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배가 고프다면 요나라처럼 하시길.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단군이 신화라고 우기고 그 윗대는 (역사시대의 편입을 떠나) 들으려고도 않는 이들이 있는데 북경의 그대들이 헌원보다 까마득히 윗대인 환인-환웅을 그대들의 조상으로 모시겠다고 덤벼들면 꽤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동아시아의 군신으로 모셔진 치우천왕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그대들이 꾸며낸 중화의 역사에서 한족은 황제 헌원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등소평의 한마디로 느닷없이 염황자손(炎黃子孫)이 되더니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뚝딱 짓고 90년대부터 아예 염제-황제-치우 삼조의 자손(炎黃蚩之孫)이랍니다.

 

중화의 바벨탑입니다. 2007년 4월18일 세운 염황이제(炎黃二帝)상입니다. 106m.
중화의 바벨탑입니다. 2007년 4월18일 세운 염황이제(炎黃二帝)상입니다. 106m.

그렇게 그대들은 하늘겨레의 문명에서 신농(염제)과 자오지 천왕(치우)을 납치 해갔습니다. 머쟎아 셋째 초원의 길을 열고 그대들의 반달리즘(vandalism)을 바로잡아줄 때가 올 것입니다. 그에 앞서 구리족(copper, 九黎族, 九黎=句麗=코리아)의 임금 자오지 천왕부터 모셔야겠습니다. 뒤죽박죽의 신화시대를 사마천처럼 짜깁기해서 나온 그대들의 역사에서는 헌원이 판천에서 신농을 이기고 탁록에서 치우를 이겨 천자가 되었다고 희망사항을 적었습니다.

이를 굳이 흐름으로 본다면 화하족(華夏族)의 독립이라 이르겠습니다. 황해문명을 이루고 있던 하늘겨레들에 가로막혀 바다 구경도 못하고 먼지 풀풀 날리는 타림분지에서 황토고원까지 애만 먹던 그대들 명목상의 조상들이 (나중에 이르겠지만 한족은 베네딕트 앤더슨도 모르는 원조 ‘상상의 공동체’입니다.) 하늘겨레들의 분화를 틈타서 마침내 황토대지(함곡관(函穀關)이 자리한, 서안에서 낙양에 이르는 골짜기) 언저리까지 밀려들어오며 화하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는 한족 역사의 선사(先史)가 될 것입니다. (바다 구경은 좀 더 오래 걸립니다.)

선사를 넘어 역사시대만 이야기하면 아사달이니 ‘하나라’도 쳐주겠습니다. 그래도 비록 기원전 2070년부터지만 그대들 또한 어쨌거나 (선사까지 넣어) ‘반만년 China 역사공동체’라 부르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도발을 멈추지 않고 역사왜곡을 넘어 역사날조를 서슴치 않는다면, 25사의 각주를 죄다 바꾸고 CCTV 1백부 작을 만들어 14억과 76억을 세뇌시키겠다고 나서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코리아 또한 1만년 초원의 길 유라시아 문명을 지키고자 그대들 반달리즘의 진주 목걸이를 가루로 만들 수밖에 없음을 알립니다.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다음 ‘공간의 잣대’는 초원의 길 그리고 ‘바다의 길’입니다. 초원의 길이 코리아의 고향인 만주에서 몽골 초원과 바이칼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중동으로 이어진다면, 바다의 길은 황해를 지중해로 하여 동남아와 인디아에 이릅니다. 비나리에 읊었듯 한무제 유철과 측천무후 무조와 벌였던 전쟁은 초원의 길을 둘러싼 ‘문명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방원이 제멋대로 벽란도 글로벌 마켓의 문을 닫음은 황해를 내버리고 바다의 길을 끊은, 반만년에 남을 역적질이었습니다.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셋째 ‘사람의 잣대’는 2편 ‘하늘겨레의 나라’에서 다루겠습니다.) 그 뒤를 이은 이가 수양대군입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kyr@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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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2017-12-05 09:38:54
이제야 역사를 배우다니 통탄하며 다음 호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