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선물’이 알려주는 불편한 진실
영화 ‘사랑의 선물’이 알려주는 불편한 진실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승인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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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가 서로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각자 쥐약을 사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실화

-인구 20%가 빈곤 늪에 빠져들고, 인구 50%가 깊은 한숨 쉬어도 문 정부 ‘모르쇠’ 일관

-남북 그리 다르지 않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북한에 수렴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

영화 ‘사랑의 선물’이 개봉 당일부터 극장가에서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다. 얼마 전(8월17일/금) 저녁, 용산 CGV에서 이 영화를 봤다. 제작비 3억원의 초저예산 영화다. 탈북자 출신 김규민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국내에서는 상연관을 구할 수 없어서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여 상을 많이 받고, 드디어 국내로 상륙했단다.

대충 1998~1999년 대기근 시기 북한 황해도가 무대다. 당성이 뛰어난 상이 군인 남편(조선로동당원)과 헌신적인 아내와 10살짜리 딸로 이루어진 가족의 비극적 얘기다. 영화에는, 남한에서 태어났다면 정말로 멋진 가정을 이뤘을 부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악당이 나온다.

그 지역의 핵심 당 간부 두 놈(큰 아버지와 젊은 조카)이다. 젊은 조카 당 간부는, (도대체 먹을게 없어서) 남편 몰래 몸을 팔아서 밥을 구하는 아내를 위협하여 (남편이 상이군인이 되면서 받은) 집을 빼앗으려 한다. 결국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각자 따로 쥐약을 사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했단다.

영화를 보면서 북한과 남한 사회의 ‘공감’ 아니 지독한 ‘둔감’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자살한 부부의 극한적인 고통에 대해 공감은 커녕 , 그 고통을 오히려 치부의 계기로 삼는 당 간부 두 놈 같은 자들이 너무 많아서다. ‘사랑의 선물’이라는 영화는 남과 북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문재인정부가 가르쳐 준 불편한 진실이다.

◇나쁜 놈 많은 점, 남과 북이 닮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어디로 가야 하나 - 정계개편을 중심으로' 대통합 개혁정치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이번에 “바른미래당 어디로 가야하나” 토론회를 방청했는데, 간만에 김민전 교수의 얘기를 듣게 됐다. 김민전 교수 발제, 토론 많이 들어봤는데, 어제 김교수의 토론은 전혀 정치학자다운 토론이 아니었다. 아이 둘 키운 엄마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였다.

2000년 즈음인가? 미국에서 둘째를 가졌는데, 미국에서 낳지 않기 위해(그러면 미국 국적이 나오니까) 임신 8개월째 서둘러 귀국했단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북한) 정책을 보다 보면 아이들이라도 미국으로 대피시키고 싶단다(김교수의 문정부에 대한 인식과 비판은 나와 거의 동일하니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김교수와 다른 김교수(김근식)의 결론은 반문 연대가 우선이고, 다당제는 그 다음이라는 얘기다. 이게 발제, 토론의 핵심이다. 발제 토론자는 여럿이었는데, 김교수의 토론이 기억에 남은 것은 문정부의 정책적 행보가 초래한 불안과 공포가 정치학자 특유의 냉철함을 쓸어내버리고, 아이 키우는 엄마의 모성 본능을 엄청나게 증폭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론자 중의 한 명인 한겨레의 성한용 기자는 문통 지지율이 50%에 가깝다는 것을 들먹이면서, 현실(위기) 인식이 과도하다면서 반문연대가 먹히겠냐고 비판했다.

생각해 보니 요즈음 문정부 지지세력이 사용하는 유일한 방패는 50% 가까운 지지율 하나 뿐이다. 논리적 반박은 거의 없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주 52시간 노동제, 탈원전, 공공 일자리 81만 개, 대북정책, 대일정책 등을 보라. 참혹한 결과뿐이다. 오직 지지율만이 진리와 정의의 기준이 되었다.

토요일에 광화문 광장에 나가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에 대한 엄청난 불안, 공포, 분노, 증오가 들끓는다. 재작년, 작년에는 좀 편향된 노인들의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불안, 공포, 분노, 증오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반일 소동과 지소미아 파기 등은 거기에 퍼붓는 또 한 바가지의 기름일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본디 일부 구성원들이 느끼는 이유있는 결핍, 고통, 불안, 분노, 공포 등에 대한 공감이 핵심 구성 요건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공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인구의 20%(소득 1분위 가구)가 빈곤의 늪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고, 인구의 50% 가까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들어도 문정부와 집권연합세력은 그냥 모르쇠 한다. 공공부문과 대기업과 규제산업 종사자들에게 선물에 선물을 얹어주고 있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노조, 공공부문, 52시간 정책 등이 그런 것들이다. 참으로 둔감하고 모질고 걍팍하다.

북한 인권 문제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것은 북한 지배 집단이 이를 완전히 생까버리고, 한술 더 떠서 폭력으로 누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정부와 집권연합세력도 북한 지배집단과 아주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념과 이권과 분노가 혼연일체가 되어 분리가 안된다.

◇문재인 정권, 사회저변에 흐르는 분노와 증오 심각

서울 광화문에서 문재인 정부 반대 시위에 나선 '일벤져스'
서울 광화문에서 문재인 정부 반대 시위에 나선 '일벤져스'

박정희 정권부터 문재인 정권까지 9개 정권을 꽤 유심히 지켜봐 왔는데, 사회 저변에 흐르는 분노와 증오는 전두환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의 경우 분노와 증오가 호남과 재야운동권에게 국한되었고, 적어도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기업인들과 하층민들에게는 정말로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경우 호남과 재야운동권과 뒤늦게 민주화운동, 독립운동하는 자칭 깨시민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극단적인 분노, 증오, 불안, 공포를 느낀다. 대한민국 국체(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20세기에 기적적으로 이룬 번영이 지속가능할지 의심케 한다. 특히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의 선도자인 기업인들, 기업엘리트들, 과학자와 기술자(엔지니어)들이 불안과 공포에 떤다. 저소득층과 흙수저들의 절망이 극심하다.

시대/현실과 대화를 나누며, 치열하게 성찰반성하면서 살아온 장기표, 주대환, 김영환 등 운동권 역시 극단적인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것은 얼굴을 맞대고 사는 타인(공동체 구성원)의 고통과 절망에 대한 외면과 둔감이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법으로 인해 시간강사들이 당하는 극단적인 고통에 대해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교수들이 어떻게 반응했나? 조국과 노골적인 어용 교수들이 자기 발 아래 문제에 대해서 무어라 했는지 한번 보시라! 외면/침묵하거나, 아니면 정부가 돈 내서 비정규직(시간강사) 정규직 시키라는 얘기 뿐일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가치생산사슬에서 원청, 1차, 2차, 3차협력업체로 내려가면서, 계단 내려가듯이 뚝뚝 떨어지는 임금과 복지도 타인의 고통과 불만에 대한 공감이 있으면 이렇게 크게 차이가 날 수가 없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크고도 부당한 격차도 마찬가지다.

조국의 행태는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한국 사회에 좀 가진자 – 권력이든, 부든, 정보지식이든, 단결투쟁력이든, 인맥이든 – 들이 보여줘온 일반적인 행태다. 2010년 이전에 이미 진보 명사가 된 조국을 알아서 모신 그 많은 교수들의 행태는 그 증거다.

다만 조국이 특별히 역겨운 것은 그런 행태들을 비판하고, 혁명적으로 시정할 것처럼 혀를 놀려왔는데 뒤로는 그 어떤 놈년보다 더했기 때문이다. 보통 수준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아도 양심과 염치 때문에 찾아먹지 않을 기회를 철저히 찾아먹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인 것은 문정부와 집권연합세력의 행태에 대해 일리있는 불안과 공포를 토로하는 사람들을 친일매국노 운운하며 비국민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반대 전국 대학가에 뿌려진 전단지. 문재인 대통령을 악마화한 일명'문노스' 전단지
문재인 정권 반대 전국 대학가에 뿌려진 전단지. 문재인 대통령을 악마화한 일명'문노스' 전단지

◇강자인 현세대, 약자인 미래세대 착취

권력이든 부든, 단결투쟁력이든, 표든, 정보지식이든, 보호 규제든 뭐든 한 둘은 가진 힘이 있는 자들이 이렇게 몰염치하고, 약자들의 고통에 둔감하면,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가 되면, 상대적인 강자인 현세대가, 상대적인 약자인 미래세대를 빨아먹는 짓을 거리낌없이 자행하게 된다. 폭탄을 뒤로 미룬다.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결혼 연기, 기피와 저출산은 이런 세대 약탈 행위에 대한 반응 아니면 저항이다.

‘사랑의 선물’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문재인정부가 가르쳐 준 불편한 진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얼마든지 빠른 속도로 북한에 수렴할 수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남과 북은 개인, 집단, 권력 공히 지독하게 모질고 걍팍하다. 국가주의(국가의존성), 가족주의, 위선적 도덕(이념)주의, 몰염치한 약탈주의도 닮았다. 이런 질기고 강력한 관성과 싸워야 하기에 통큰 단결과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 참 영화 좀 보시라. 우리 시대 한반도와 한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얘긴데, 영화 투자비도 조달을 못했고, 상영관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런데도 소수의 영화관은 연일 매진 행진이라고 한다. 영화 보러 온 사람들이 표를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기적(?)이 이어지고 있다. 몇 안 남은 상영관이라도 찾아서 좀 보시라!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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