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개혁해야 나라가 산다] ⑦ 공기업 민영화 여전히 유효한가

귀족노조, 자율·책임·경쟁체제 싫어...온갖 이유대며 격렬히 반대
尹정부, 전기·가스·지하철 등 틀어쥔 노조 기득권 꺾기 쉽지 잖아

지난 2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 보수 성향 단체 회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 보수 성향 단체 회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김대중 정부는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라는 기치 아래 공기업 26개 중 11개를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포항제철(POSCO), KT 등 8개사를 완료했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3사는 산업의 특성상 법령 제·개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법안만 상정한 채 다음 정권인 노무현 정부로 넘겼다.

전기, 가스, 냉·온수 등은 대표적인 망(Network) 산업이다. 망 산업은 공급망을 먼저 구축한 사업자에 의해 자연스럽게 독점이 일어난다. 철도·항공·전파(주파수), 광통신, 도로 등도 대표적인 망 산업이다.

망 산업은 민간·후발업체가 진입하기 어렵다. 국가가 직접 틀어쥐되 망으로 공급하는 전기, 가스, 항공, 철도, 버스 등은 복수의 사업자에 의한 경쟁체제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쟁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가능한 분야는 따로 떼어 몇 개의 독립 민간 사업체로 만들고, 곤란한 분야는 공공기관으로 존치하는 방식인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죽고 사는 경쟁체제는 공급자들로 하여금 생사를 걸고 혁신을 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세계를 무대로 돈 벌 기회를 찾아 나서게 된다.

김대중 정부의 구조 개편안은 이렇다. 전력산업의 경우 석탄·유연탄·가스·중유 등을 태워 전력을 생산하는 5개의 발전 자회사를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배전부문에 한해 별도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가스공사는 도입·판매 부문을 3개 회사로 나누어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인수기지와 배관망 등 설비부문은 공기업으로 유지하면서 공동운영제를 하는 것이었다. 지역난방공사는 주로 폐열을 이용해 특정 지역에 열이나 냉·온수를 공급하는 지사(현재 19개)로 구성돼 있기에 발전 자회사와 본질이 같다.

이들 3개 회사의 사업은 제조업처럼 해외로부터 원료 구매나 개발, 수송, 저장, 에너지 생산, 수요자 발굴 및 공급 등에서 혁신의 여지가 많다. 또한 후발 개도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성장하는 사업으로 민영화=자율책임 경영체제가 되면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업종 다각화도 할 수 있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공기업 체제로는 이 같은 창의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이것이 민영화를 하려고 한 이유였다.

하지만 종업원 대부분은 소비자 선택에 따라 죽고 사는 자율책임 경쟁체제를 싫어한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노조는 ‘신자유주의 반대’ 운운하며 "민영화는 곧 사유화요, 재벌 배불리기"라며 강력히 반발한다. 고용 불안과 수급 불안, 그리고 요금 폭등을 초래한다는 명분도 내세운다. 담당 부처 공무원들도 퇴임 후 갈 자리라서 공기업 존치를 원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국정 현안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는 인수위원회 시절에 공무원과 전문가를 참칭하는 노조 앞잡이들이 나서 민영화를 저지한다.

그 결과가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 백서의 관련 내용이다. 백서는 "전력·가스 등 망 산업 민영화와 관련해 경쟁력과 효율성 제고가 시급하다는 찬성과 수급 불안·요금 인상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대론이 공존"한다고 썼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작성자가 전력·가스산업 구조개편 방향을 왜곡했다. 작성자의 말대로 하면 ‘경쟁력과 효율성 제고’의 정치적 이익이 1이라면 ‘수급 불안과 요금 인상’으로 인한 정치적 손실은 100이라서 민영화를 할 이유가 없다. 이로써 정책 기조를 민영화에서 자율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의 운영 합리화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쳤지만 김대중 정부의 전력·가스산업 구조개편안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민영화와 합리화는 커녕 ‘사회적 가치 실현 선도’ 의 이름으로 인력만 늘리는 등 방만과 비대를 선도했다. 3개 에너지 공기업 문제를 길게 거론한 것은 이것이 마지막 남은 민영화 대상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민영화 대상이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지난 2013~14년 박근혜 정부가 수서발 KTX를 별도 공기업인 SRT로 분리하려는 시도조차 민영화의 전 단계라며 총파업을 벌였다. 철도노조의 이 같은 위력과 행태로 미루어 국민의 생명선인 전기·가스·철도·지하철 등을 틀어쥔 노조의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은 1987년 이후 최약체 정부인 윤석열 정부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못 꿀 개혁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이들 공기업은 방만하지만 적자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전력의 천문학적 적자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경직된 규제 탓이지 방만 경영 탓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공기업 체제로 인해 잃어버린 엄청난 기회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또한 노조가 공기업을 사유화해 양반귀족처럼 살면서 공정과 상식을 짓밟고, 청년의 기회를 빼앗으며, 사회의 활력을 억누르고 있다. 국민의 등골을 빼먹는 짓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
한국전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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