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김정은은 지난 8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를 주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사태 종식을 선언했다. 이어 여동생 김여정이 토론자로 나서 공개 연설을 했고, 조선중앙TV는 다음날 오후 김여정의 연설 전문을 육성으로 공개했다.

김여정이 대남·대미 관련 담화를 발표한 적은 많지만, 대남정책과 관련해 공개 회의에서 연설자로 나서고 연설 전문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를 두고 적지않은 언론과 전문가는 김여정의 대남정책 총괄자 역할과 정치적 위상을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준(準) 왕조체제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제2인자가 누구인가?’라는 논의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김여정의 연설 내용이다. 김여정은 연설에서 코로나19의 유입이 남측에서 보낸 "삐라(전단)와 화폐, 너절한 소책자, 물건짝들"이 원인이라면서 "만약 적들이 공화국에 비루스(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는 위험한 짓거리를 계속 행하는 경우 비루스는 물론 남조선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장고 끝에 악수’라고,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하고 도발 구실을 축적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부지불식간에 저들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냈다. 다름아니라 전단 살포 등 대북 심리전을 대단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북침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의 ‘북침 주장’은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통치술일 뿐, 한미의 선제공격이 없으리라는 것은 김정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 주민이 실상을 인지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장마당이 확산하고 손전화, USB, DVD 등의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외부 문화와 소식을 비교적 자유롭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당연한 결과로, 북한 사회 저변에 비사회주의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이에 대응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배치되는 사소한 현상도 소홀히 하거나 방심하면 피로써 쟁취한 사회주의가 하루아침에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지게 된다"라고 경계하고 있다. 특히 MZ세대를 대상으로 "이색적인 사상문화와 변태적인 생활 풍조에 물들면 개인의 향락만을 추구하며 나아가서 당과 혁명, 조국을 배반하게 된다는 것이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가 새겨주는 심각한 교훈"이라는 등 사상 교육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다. 2015년에는 외부 드라마나 노래 등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형법을 개정하는 한편, 김정은이 직접 ‘비사회주의 현상의 섬멸’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런 북한의 현실에서 대북 전단은 ‘비사회주의 현상’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김씨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 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전무하다. 지난 1993년 NPT 탈퇴로 야기된 북핵 위기에 대응해 거의 30년 가까이 추진한 정책의 귀납적 결론이다. 그리고 이는 북핵이 국체(國體)가 아니라 ‘김체’(金體)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비핵화 추진은, 북한의 ‘시간 끌기’ 전술에 휘말려 결국은 교착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이를 탈피하려면 우회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이 비핵화에 응하지 않으면, 전단 살포·휴전선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심리전을 강화해 북한 내 비사회주의를 확산하겠다고 압박하는 것이다. 비사회주의야말로 김정은 체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핵무기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