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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떼)等’자는 윗부분의 대나무竹(죽)에서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가로·세로 다양한 치수로 잘라 쓰기 편리한 대나무가 뭔가를 분류할 때 잣대나 범주로 쉽게 이용되면서, ‘등급’이란 뜻이 더해졌다. 等의 竹 아래부분이 흙土(토)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칠止(지)가 변한 모양이며, 그 밑에 있는 게 손手(수)의 변형인 마디寸(촌)이다. 즉 대나무길이를 손으로 가지런히 하는 행위, 여기서 ‘같다’ ‘같게 만들다’란 의미가 발생했다. ‘평등’ ‘균등’ 같은 근대어들 역시 그 연장에서 생성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파생된 게 복수형 ‘~들’의 等이다. 16세기 백화소설 <서유기>에 최초 용례가 보인 이래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우리들은 이에 우리조선의 독립국임과~) 운운, 기미독립선언서 도입부를 장식한다. ‘우리들’이 표준으로 자리잡기 이전엔 격식있는 말투가 吾等(오등)이었다. 我等(와레라), 일본어에도 남아 있다.

‘等’의 근대적 쓰임새는 라틴어 ‘et cetra’(그리고 그 나머지)로부터 왔다. 유럽 각국에선 영어 ‘And so on’처럼 저마다의 국어로 번역하거나 라틴어 축약형(etc.)을 쓰고 ‘엣세트라’라 읽는다. 이것이 일본어 ‘나도(等)’를 거쳐 한자의 우리말 발음으로 한반도에 진입했다. 근대법(法)을 대부분 일본을 통해 수입했기 때문에, ‘등’은 법조문을 비롯해 격식차린 문장에 자주 등장한다. 전부 나열하지 않고 일부를 ‘등’으로 처리해 둔 것이 훗날 ‘해석의 공간’을 확장하기도 한다.

최근 ‘등’ 한 글자로 인해, 몇 개월 전 무리하게 개정된 검찰청법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부패·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이 구절 속의 ‘등’ 한 글자가 시행령(대통령령)을 통해 부패·경제범죄를 넘어 구체적인 수사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게 만들었다. 최소한 법리적으론 이른바 ‘검찰수사권완전박탈(검수완박)’의 전면 무력화가 가능한 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법적 구속력을 지닌 문서의 글자·단어 하나로 상황이 뒤집히는 일은 종종 있어도, 국가적 일대 뉴스가 된 예는 드물지 싶다. 법률·행정 문서들이란 근대어의 집합체이자, ‘근대어의 위력’이 가장 첨예하게 살아 있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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