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
김인희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당대표를 뽑는 8·28 전당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전국 순회 경선에서 이재명 의원이 압도적인 1위를 달리며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마저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다.

이번 경선이 시작하기도 전에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회자될 정도로 이재명 의원의 당권 장악은 예상된 수순이다. 이 의원은 초선 국회의원이지만 대선 후보까지 올라갔던 인물이고 대선 본선에서도 불과 0.73%p 차이로 패배했으니 당연히 당 대표를 맡을만한 체급의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 의원의 경선 득표율과는 별개로 이번 민주당의 전당대회 경선은 흥행 참패 수준이다. 전국 순회 경선이 열린 15개 지역에서 권리당원 투표율이 50%를 넘긴 지역은 경북·대구 등 2개 지역에 불과했다. 반대로 민주당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호남에서의 권리당원 투표율은 처참하다. 광주는 34.18%, 전북은 34.07%, 전남은 37.52%로 모두 30%대에 그쳤다.

이것은 당원들의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 이런 자포자기 심리가 번졌을까.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민주당이 제 1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건전한 정치’가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건전한 야당’이라는 전제조건은 이 의원이 당권을 잡으면 성립되기 어렵다.

다소 유치하긴 하지만 단순한 진영논리로 접근해 보자면 이재명 의원의 당권 장악은 야당보다 오히려 여당에서 더 환영할만한 일이다. 대장동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공금 횡령 등 여러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의원이 야당 대표가 된다면 본인 방어만 하기에도 급급한 지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의원은 그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 언급 자체를 ‘야당탄압’으로 치부하며 방어막을 치려 하겠지만, 확실한 증거가 드러난다면 국회의원으로서의 불체포 특권도, 대한민국 의전서열 8위에 해당하는 야당 대표라는 위치도 그를 보호할 수는 없게 된다.

사법리스크 뿐만이 아니다. 이 의원은 20년 넘게 민주당의 주류를 이뤄왔던 친노·친문계와 대척점에 서 있다. 또 이재명 의원이 ‘통합’을 외치고는 있지만 그의 근본 스타일을 보면 자신에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세력을 온전히 내버려 둘 가능성은 만무하다. 여전히 친노·친문 세력이 작지 않음에도 그들과 대립하는 이 의원이 당권을 잡는다는 것은 차기 총선에서 친노·친문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야권은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권의 금언을 생각하면 지금의 민주당은 그 금언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길로 접어든 셈이다. 하지만 이재명이라는 개인을 향한 팬덤에 빠진 민주당원들에게는 그런 미래의 위기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당이 잘 나갈 때에만 주인행세를 하고 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는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그런 당원은 주인의 자격이 없다. 민주당원들은 이대로 민주당의 사당(私黨)화를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민주당이 정상적인 야당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정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이는 오롯이 민주당 당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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