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문장

 

흉터는 보여준다
네가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걸
네가 상처를 이겨냈음을

흉터는 말해준다
네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그럼에도 네가 살아남았음을

흉터는 물에 지워지지 않는다
네가 한때 상처와 싸웠음을 기억하라고
그러므로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러므로 몸의 온전한 부분을
잘 보호하라고

흉터는 어쩌면
네가 무엇을 통과했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화상 입힌 불의 흔적
네가 네 몸에 새긴 이야기
완벽한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고통

흉터는 작은 닿음에도 전율하고
숨이 멎는다
상처받은 일을 잊지 말라고
영혼을 더 이상 아픔에 내어주지 말라고

너의 흉터를 내게 보여달라
나는 내 흉터를 보여줄 테니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류시화(1959~ )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우리는 모두 흉터 한두 개씩 갖고 산다. 흉터는 상처가 아물었다는 표시다. 시인의 표현대로 ‘네가 상처를 이겨냈음을’ 알게 하는 증거다. 흉터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흉터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흉터조차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나직이 말한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하고 노래한 랭보처럼 당당하라고 한다.

하지만 흉터자리의 새살은 연하디연해서 ‘작은 닿음에도 전율하고 숨이 멎는다.’ 상처는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입는 것이고, 결국 흉터를 남긴다. 시인은 ‘너의 흉터를 내게 보여달라 / 나는 내 흉터를 보여줄 테니 /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하고 노래하며, 독자와 공감할 준비가 돼 있음을 피력한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따지고 보면 그게 다 흉터의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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