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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리스크 관리’를 주문한데 이어 외환당국도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은 13년여 만에 달러당 1340원을 돌파했다. 강달러 지속으로 환율 상승의 흐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환율 급등은 고물가 속 경기침체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율의 가파른 오름세는 수입물가 상승→기준금리 추가 인상→투자 위축→경기둔화→원화가치 하락→수입물가 재상승의 악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출에 호재로 작용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제품의 원화가격이 하락하지 않더라도 환율이 오르면 달러 기준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제고되는 것이다. 또한 환율이 오르면 수출 물량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원화 기준으로 수출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확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환율이 10% 상승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데 그치지만 수입이 3.6% 증가해 오히려 무역적자가 확대된다는 것이 무역협회의 분석이다. 나쁜 원저(低)인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요인 분석’ 보고서에서도 실질실효환율 상승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에 비해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환율을 말한다.

한마디로 보고서의 요지는 최근 들어 환율이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축소됐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이 1% 절하될 때 경상수지 흑자는 0.016%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밸류체인 강화로 수출을 하기 위해 수입하는 중간재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우리나라가 수출하는 제품의 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가격보다는 품질, 브랜드, 디자인 등 비(非)가격경쟁력이 수출 실적에 더 큰 영향을 주게 된 것도 요인이다. 아울러 해외에서 생산되는 한국산 제품의 비중이 늘어난 것 역시 원화가치 하락이 가져오는 가격경쟁력 효과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환율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는 원유 등 에너지와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환율이 오르면 해당 품목에 대한 원화 기준 가격을 올려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게 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발표한 ‘2022년 7월 수출입 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153.49로 전년 동월 대비 27.9%나 올랐다.

최근 환율 상승은 달러 강세에 따른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 기조와 관련 있다. 미 연준은 지난주 공개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9월에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밟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상태다.

한국은행은 2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6% 넘게 치솟은 소비자물가가 아직 정점을 지났다고 확신하기 어려운데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이미 우리나라보다 높아진 상태에서 격차가 더 벌어지면 환율에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경기침체 우려도 함께 커진 만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베이비스텝에 나설 공산이 크다. 한국은행이 무리하게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올리면 역대 첫 4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금리를 끌어올려 투자 위축과 자산가격 하락을 매개로 경기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원화가치 하락과 수입물가 상승으로 연결돼 한국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고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더라도 어느 나라든 통상마찰이 없는 범위에서 적정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의 환율 상승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조만간 심리적 마지노선인 1350원도 위협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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