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소동, ”재일동포 슬픔 아는가?“
“반일 소동, ”재일동포 슬픔 아는가?“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9.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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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재일동포의 간곡한 호소

다음 글은 전후 최악으로 기록될 한일대립의 파고에 떠밀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한 젊은 재일동포사업가가 일본의 유수한 주간지 현대비즈니스(現代ビジネス)이번 주 호에 실은 호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관제 반일 소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 재일 코리안들이다. 한국인들이 고통받는 재일코리안들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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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 온 사업 파트너인 한국인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 지겨운 한일간의 싸움은 어디까지 갈까” 라고. 매일같이 들어오는 한일간의 외교나 무역뉴스를 듣다보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재일한국인 3세(三世)다. 일본에 태어났고 보통 일본인과 다름 없이 살지만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부터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실감을 바탕으로 전후최악이라 할 지금의 한일대립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전하려한다.

◇나의 외가는 태평양전쟁 전몰자 유족

우선 나의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전쟁에 대해 말해두고자 한다. 나의 외조모는 한국인이며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이던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 땐 시대가 시대인만큼 형제가 많았다. 외조모는 9남매 중 장녀이고 위로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식민지출신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징집되지 않았으나 전황이 나빠진 1945년 군대에 끌려가 남방에 배치된 후 바로 전사했다.

일본군이 남방 전지에서 전사하는 것은 별로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외조모 등 유족이 받은 처우는 일본인 병사와 그들의 가족이 받은 대우와 달랐다. 외조모의 오빠는 식민지출신이기 때문에 전사후 유족은 유족연금이나 다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전사를 알린 통지서 한 장 뿐이었다.

가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은 태평양전쟁에 종군한 군인과 그 유족에 대한 보상을 규정한 ‘전상병자전몰자유족등원호법(戰傷病者戰歿者遺族等援護法)’의 대상자에 구 식민지 출신자는 제외했기 때문이었다. 보상대상은 ‘일본국적을 보유한 자’에 한정돼 있었다. 당시에는 맏아들이 사망하면 가족의 슬픔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족의 생활을 받치는 손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재일 코리안의 고통


일본 동경한국학교는 매년 3·1절에 일본 천황이 거주하는 황궁을 중고생 전원이 한 바뀌 도는 단축마라톤을 열고 있다.

맏아들이 사망하자 나의 외할머니가 남은 가족 7형제를 보살펴야 했다. 다행이 외할머니 집안은 조선출신자 로서는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건이 좀 나은 편이었다. 유족연금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많은 조선인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이 많았으며 전쟁이 끝나고도 빈곤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무릇 빈곤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전쟁 때문에 대를 이어 빈곤이 승계되는 가정은 보다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전쟁 때문에 경제기반이 완전히 파괴돼 본인들의 힘만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빈곤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빈곤의 연쇄원인은 물론 ‘전쟁’이었다. 많은 구식민지 출신자들은 딸린 가족 모두가 이 같은 부(負)의 유산을 이어받게됐다.

따라서 그들에게 ‘그 전쟁은 지나간 일’ 이라고 간단하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구식민지 출신자들의 가족과 후손들에게는 ‘그 전쟁, 그 식민지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다만 그러한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현재 우호국이어야 할 한일 두 나라가 이렇게 극한 대립하고있는 상황이 재일한국인의 마음을 편치않게 한다는 사실이다. 감정대립의 이유가 있다 해도 이 같은 파탄과 다름없는 상황을 좋아할 재일동포는 한 사람도 없다.

◇“한국이 터무니없네요”라는 말이 쏟아진다

일본 야키니꾸(한국식 불고기) 거리

한일 간의 대립은 재일동포들의 일상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소규모 기업을 경영하는 필자에게 사업상 일로 매일 만나는 많은 일본사람으로부터 “한국은 터무니 없네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상대방은 마치 프로야구나 날씨 얘기하듯 일상 잡담처럼 해 경영에는 큰 지장은 없지만 역시 사업을 하는 내 동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된다.

필자의 동생은 불고기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많은 메뉴가 한국요리인데 대부분의 손님이 일본사람이다. 최악의 경우 손님이 줄지 않을까 예상된다. 앞으로 한일 간의 외교교섭에 대해 나보다 동생이 더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다.

통상 부르는 이름이나 본명으로 회사에 출근하거나, 학교에 통학하거나, 귀화인이나 아닌 사람을 막론하고 한국에 뿌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문제로 내일의 자신이나 가족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 한일대립은 두 나라 정부나 관광사업 분야 사람들은 물론 많은 보통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일한국인이라서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우리재일한국인은 나름대로의 정보전달 운동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은 한일 두 나라의 입장과 기분을 잘 알 수 있어 양쪽 정보를 서로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곳 동포들 중에는 적극적인 정보전달이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에 한 다리를 두고 살고 있는 동포들은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 대해 모두 신경을 써야 할 입장이다.

한반도 출신으로 일본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우리에게 대립하고 있는 두 나라가 타협하도록 거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잘 알고 있다. 한일 두나라 관계가 정말 좋았던 때는 1965년국교정상화 후 군사정권의 한 시기와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때 뿐이었던 것으로 알고있다. 그 때 이외에는 냉온탕을 거듭하는 험난한 역사였다.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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