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 예수향기교회 김명혁 목사, 21일 주일예배서 설교 
“사랑의 원자탄에는 ‘가난·고난·고통·슬픔·아픔’이 있었던 것”

장남 동인(가운데)과 함께한 손양원 목사(왼쪽)와 정양순 사모.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장남 동인(가운데)과 함께한 손양원 목사(왼쪽)와 정양순 사모.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손양원 목사님만큼 그렇게 진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산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 나환자들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 주어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감사하며 살다가 48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대가로 피나는 ‘고문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지난 21일 주일예배에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눅 6:20~21)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청주 예수향기교회 김명혁 목사는 故 손양원 목사의 예를 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목사는 “(손양원 목사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두 아들 동인이 동신이가 총살당해 죽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픈 비극을 당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두 아들이 총살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다”며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고 했다.

김 목사는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며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10월 26일 두 아들의 시체를 담은 관이 애양원 뜰에 도착했을 때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관 위에 엎어져 울부짖으며 비통해 했다. 그런데 두 아들을 잃은 슬픔과 비통함이 그렇게 컸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총살한 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다”며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을 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를 설득해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아버지는 듣지 않으려는 딸을 설득했다”며 “(손양원 목사는) ‘동희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 단 말이냐. 순종치 않는다면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동희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딸은 몇 번이나 반항하며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혹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며 “(그러자 손 목사는)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해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동희 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다”고 했다.

이어 “동희 양의 말이 끝나고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다”며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손동희 권사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 광경이야말로 오늘까지 내 눈 앞에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다”며 “손양원 목사님이 한국교회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자랑하는 사랑의 원자탄이 된 데는 보통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극도의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에게 있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가장 값지고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습니다. 그 보석은 하늘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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