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리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1915~2000)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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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를 두고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는 걸까, 여름이 채 물러가기 전에 가을날의 시가 떠오른 것은.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산책길에 귀뚜라미소리도 들었으니 마중물처럼 시를 앞세워 가을을 마중 나가야겠다.

‘푸르른 날’은, 릴케의 ‘가을날’에 견줄 수 있는 명시다. 릴케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가을날을 노래했다면 서정주는 우리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으로 가을날을 노래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걱정은 잠시 사라지고 마음은 서글퍼진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기쁘거나 달뜬 마음이 아니라 서글픈 마음이 앞서는 것은 민족적 한(恨)의 정서가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고 미당은 진단했다. 우리나라 설화에는 유독 희생 모티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하는 노래가 가능한 것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멀리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밖에 모든 그리움을 그리워하자고 시인은 노래한다. 외로움을 탄다는 건 홀로 쓸쓸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 상태이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든’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노래한다. 어떤 기막힌 광경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저 저 저 하고 말을 더듬던가 저런 저런 하면서 뒷말을 잇지 못한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저기 저기 저’는 관념과 이성을 초월한, 눈부신 가을 풍경을 맞닥뜨린 순간 그만 넋이 나가버렸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다. 가을날 풍경에 푹 빠져 있을 동안 느닷없이 ‘눈이 나리고’ ‘봄이 또 와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살아도, 네가 죽고서 내가 살아도’ 하는 수 없다. 지금 이 상태를 어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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