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Japan Inside Out

1939년 봄 워싱턴 정착 후
2년간 일본 침략야욕 집필
1941년 7월 영어로 출판
1941년 9월 펄벅의 서평
1954년 한글판 이승만 서문
‘일미(日米)전쟁미래기 구경’

류석춘
류석춘

하와이 동지회 지원을 배경으로 1939년 봄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은 백악관에서 정북으로 약 4Km 떨어진 Hobart Street 2층으로 된 작은 집을 구했다. 구미위원부 사무실과 자신의 주거를 동시에 해결할 요량으로 구한 집이다. 위치도 좋았다. 워싱턴의 외교 공관들이 밀집한 로간서클 (Logan Circle) 이 백악관과 이승만의 집 딱 중간에 있었다.

생활의 안정을 찾은 이승만은 일본 군국주의 침략야욕을 고발하는 책 집필에 전념했다.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은 중국 남부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 미국은 일본의 본심을 모른 채 남의 일인 양 태평이었다. 유럽에서는 1939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일본이 태평양을 장악하기 위해 결국 미국과 일전을 불사할 것이란 판단이 이승만의 손에 잡히고 있었다.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는 책을 쓰느라 이승만은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프란체스카는 원고를 3번이나 타이핑 하면서 손가락이 짓물렀다. 마침내 19417월 이승만의 영어책 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 이 세상에 나왔다. 이승만이 느끼고 있던 전쟁의 위협을 미국 아니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책이었다. 이승만은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의 정세 분석을 통해 평화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미국은 다가오는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책이 출판되자 당시 여론을 주도하던 평화주의자들은 역시나 책을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Asia Magazine 19419월호에 서평을 쓴 펄 벅 (Pearl Buck, 1892 ~ 1973, 1931The Good Earth [대지] 발표, 1938년 노벨 문학상 수상) 나는 이것이 [이 책이] 진실이 아니라 말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오직 너무 진실인 것이 두렵다며 극찬했다. 책 출판 반년 만에 벌어진 일본의 1941127일 진주만 공습은 이승만을 세계적 예언자로 만들었고,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일본의 공격을 예언하며 이승만이 1941년 7월 뉴욕에서 출판한 'Japan Inside Out' 표지(위). 아래는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알리는 하와이 신문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 호외.
일본의 공격을 예언하며 이승만이 1941년 7월 뉴욕에서 출판한 'Japan Inside Out' 표지(위). 아래는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알리는 하와이 신문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 호외.

무엇이 이승만을 이토록 확신에 차게 만들었는가? 어떻게 이승만은 군국주의 일본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는가?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가 이승만 집권기인 19548월 이 책을 번역해 자유당 선전부에서 출판한 책 서문에 답이 있다. 이승만 당신이 직접 쓴 한글판 서문이다. 그대로 인용한다.

“1895년에 처음으로 신세계 형편을 알게 된 이후로 일인(日人)들이 발행한 책 두 권을 구경하였는데, 하나는 일로전쟁미래기(日露戰爭未來記) , 또 하나는 일미전쟁미래기(日美戰爭未來記) 이다.

이 두 책을 구경한 이후에는 일본의 야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짐작하게 되었으므로 우리나라가 위급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어서, 하루바삐 정부를 권고하여 국권 보호에 힘쓰게 하려고 하였으나, 궁궐과 정부에서 해가는 일은 점점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므로, 혁명운동을 시작해서 백방으로 모험 분투하다가 끝내 감옥에 투옥되었다.

사경(死境)에 빠졌던 목숨이 다행히 부지(扶支)되어, 1904년에 일로전쟁(日露戰爭)이 벌어져서 정부 유신당(維新黨)이 잠시 권리를 잡게 되면서 내가 7[57개월] 만에 옥문(獄門)을 벗어나오 게 되니, 벌써 나라는 다 일인의 손에 들어가고 왜() 경찰이 내 뒤를 따르게 되니, 민영환·한규설 양인의 공문(公文)을 받아서 몸에 감추고 미국을 향하여 떠날 적에 겨우 하와이로 가는 이민(移民) 배 삼등을 얻어 타고 이민들 틈에 섞여서 가게 되었다.

하와이를 들렀다가 미주(美洲)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내리게 되니, 내가 가는 목적은 미국 정부와 또 미국 국회의원 몇 사람에게 가는 편지를 가지고 워싱턴에 가서 [1882] 한미조약(韓美條約) 안에 규정되어 있는 원호(援護)한다는 조건을 들어서 도움을 원하는 것이 첫째 목적인데, 거기에 따라서 일본이 미국과 싸울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인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그때의 9년 전에 읽은 일로전쟁기는 벌써 시작되었으니 한 가지는 시행된 것이요, ‘일미전쟁또한 일어날 것은 의심 없는 것으로 미국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한 것인데, 미국에 도움도 되고 따라서 우리나라가 후원을 받을 것을 몽상(夢想) 하였던 것이다.

그때 미국의 형편을 보니, 일인이 미국의 신문과 잡지를 다 연락하여 매년 백만 달라 이상을 미국에 선전비로 쓰면서 미국 전체의 눈을 가리고 저희 말만 가져다 보이고 들려주는데, 내가 그 책 일미전쟁미래기를 말하면 모두 비웃고 일미(日美) 간에 악감(惡感)을 자아내어 한국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한다는) 지목(指目)을 받고 지냈던 것이다.

왼쪽은 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日露戰爭未來記』 (法令館 編輯部 編述). 오른쪽은 1920년 일본에서 출판된 소설 『日米戰爭未來記』 (樋口麗陽 著).
왼쪽은 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日露戰爭未來記』 (法令館 編輯部 編述). 오른쪽은 1920년 일본에서 출판된 소설 『日米戰爭未來記』 (樋口麗陽 著).

1940년 전후에는 일인의 전쟁준비가 거의 끝나서 전쟁이 곧 터질 것 같아, 미국인들은 꿈속같이 모르고 잠들고 있는데 이것을 알려주어야 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이 책 쓰기를 시작하였는데, 우선 이 책을 써도 발행할 사람이 없어서 문제요, 또 혹 발간을 할지라도 읽을 사람이 없는 것을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어서, 이 책 속에 말한 것은 그때 형편을 따라서 순하게 언사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 책을 쓸 때에는 전쟁이 하루 이틀 내에 터져 나올 줄 알고 총총히 쓰게 되어 그때 현상만 들어서 말하였다. 1941128일 일인들이 진주만에 폭탄을 떨어뜨려 미국인 3천 명을 일시에 사망시킨 이후로 전 미국이 일인들의 불의(不義)한 심리를 깨닫게 되어, 전쟁을 하여 많은 인원을 없애고 또한 많은 물질까지 허비한 후 1945년에 이르러 승리를 얻은 것이다.

이 전쟁이 벌어지면서부터 내 글을 읽고 내 말을 들은 미국인들이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어 나를 선비라고까지 말하게 되었는데, 실상은 내가 미국인들이 모르는 것을 알았다고 하겠지만, 동양 사람들은 거반 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획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데, 일본의 선전 방책이 교활하고 뛰어났으며, 전쟁이 임박해서는 일인들이 미국에서만 1년에 500만 달러를 써서 전국적 조직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국내 선전을 극렬히 해서 저희 백성들에게는 모두가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하되 미국인들은 한 사람도 이를 알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외국에 대한 선전 재료로 국내 선전과 배치되는 말을 만들어 내어서 일본인들은 모두 미국의 친구요 또한 충성스러운 동맹국가라는 것을 선전하여, 혹 어떤 사람이 일본의 내정을 이야기하면 그 말을 거짓으로 돌렸던 까닭으로 미국인들만 이 전쟁이 임박한 것을 모르고 있었지 동양인은 거반 다 이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일본 (Japan) 의 속마음 (Inside) 을 바깥으로 드러낸 (Out) 이라는 설명이다. 한글 번역본은 지금까지 총 4종이 나왔다. 1) 1954년 박마리아 일본내막기(자유당 선전부), 2) 1987년 이종익 일본군국주의의 실상(나남), 3) 2007년 대한언론인회 일본, 그 가면의 실체(청미디어), 4) 2015년 류광현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비봉). 당연히 최근에 출판된 책이 읽기도 쉽고 오역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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