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배달앱 시장에 전격 진출했다. 금융업계는 신한은행의 이번 행보가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은행권의 탈금융 사업을 본격화할 신호탄이자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

지난 수 년간 시중은행들은 빅테크의 전방위적 공세에 시달렸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허용되면서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와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 출현부터 이달 시범서비스에 돌입한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신의 시장을 빼앗기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은행권이 빅테크 고유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플랫폼 시장에 깃발을 꽂는 ‘역공’에 나서 주목된다.

22일 신한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자체 배달 앱 ‘땡겨요’의 개발을 완료하고, 베타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베타 서비스는 상용화 이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실시하는 것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마포·관악·광진 등 6개구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신한은행은 내년 1월 14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해 연말까지 서울과 경기 등지에서 8만여 가맹점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시중은행들이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한 적은 있지만 은행 앱이 아닌 별도 앱으로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땡겨요는 요기요·배달의민족·쿠팡이츠 등이 장악 중인 배달 앱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강력한 유인책을 갖췄다. 가맹 수수료를 업계 최저 수준인 2%로 낮췄고, 광고비·입점수수료·월이용료도 없앴다. 기존 배달 앱은 가맹 수수료가 6~15%에 달해 가맹점의 원성이 상당하다. 또한 계좌이체는 당일, 카드결제는 익일 정산이 원칙이다. 쿠폰, 세일 등 고객들이 혹할 만한 리워드도 가득하다. 자칫 가맹점과 이용자 이탈 러시라도 일어나면 배달 앱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신한은행이 이처럼 파격적 혜택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배달 앱 자체로 돈을 벌 생각이 없어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가맹점 매출, 라이더 소득 등 앱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특화 금융상품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라며 "지난 10월 제1금융권 최초로 선보인 배달 라이더 전용 대출상품이 그 실례"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이런 사업구조가 대학생·사회초년생 같은 ‘신파일러(thin filer)’ 대출시장을 공략할 혁신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신파일러는 신용카드 사용실적 등 신용평가를 위한 금융이력이 거의 없어 대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뜻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 4월 가계대출 총량 관리제 도입으로 은행들의 대출 영업에 제동이 걸렸지만 신파일러를 포함한 중저신용자는 총량 관리제에서 제외됐다"며 "1300만명 규모로 알려진 신파일러가 매력적인 신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금융 공룡’으로 불리는 시중은행들은 여타 산업계에 비해 시대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다. 빅테크의 공세에 하릴없이 밀렸던 이유 역시 틀을 깨는 혁신이 아닌 밥그릇 수호를 위한 방어 기제 발동에 급급했다는 것에서 찾는 전문가도 많다.

디지털 전환의 물결 속에 은행 업무의 비대면화가 급격히 진행되자 인력 과잉에 빠진 은행들이 희망퇴직 확대로 대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만 국민·신한·하나·우리·씨티 등 7개 시중은행에서 49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수년의 시간을 갖고도 해법을 찾지 못해 희망퇴직이라는 1차원적 카드를 핵심 정책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신한은행의 플랫폼 시장 진출은 빅테크에 대한 은행권의 반격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금융권 탈금융화의 신호탄이자 기폭제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의 지원 사격도 기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은행의 원활한 이(異)업종 진출을 돕는 내용을 담은 ‘2022년 금융정책 추진 방향’을 대통령에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헬스케어 서비스를 위한 선불 전자지급 업무를 보험사의 겸영·부수업무로 인정하고, 카드사가 종합 지불결제 사업자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전자금융거래법도 개정할 계획이다.

이렇듯 금융위원회가 지원 의사를 분명히 한 만큼 신한은행이 이업종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다면 여타 은행들도 다양한 금융·비금융 융합서비스 도전에 자신감이 붙을 수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농협은행의 꽃배달, 우리은행의 편의점 배달 등 다수의 은행들이 라이프스타일 서비스(플랫폼)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요기요, 배달의민족과 손잡고 신사업을 발굴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의 이업종 진출을 막는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금융위원회의 규제 철폐 행보가 충분한 수준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편익을 앞세워 빅테크에 금융권의 문호를 열었듯 금융권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기회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