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2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한국은행의 연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국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금리 앞에 장사 없다’는 시장 격언처럼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내림세가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은행이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한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주거 수요가 높은 서울에서도 매수심리가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빅스텝 발표가 있었던 7월 13일 이후 매주 하락하며 8월 둘째 주엔 84.4를 기록했다. 이는 3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매매수급지수는 한국부동산원의 회원 중개업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의 비중을 지수화한 것이다.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뜻이며,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의 사상 첫 빅스텝 단행이라는 이슈가 위축되고 있던 매수심리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데, 문제는 ‘금리 리스크’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또 한번 이례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26일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9분 간의 짧은 연설임에도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46차례나 언급했다. 잭슨홀 미팅은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하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움으로 각국 중앙은행 총재와 학계 인사들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회의다.

시장에서는 파월 의장의 언급을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 단행 예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음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또 한번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 연준이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 또는 강화하면 한국은행도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 연준이 다음달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다면 현재 미국과 비슷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연 2.5%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한미 간 금리 역전 폭이 커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유출은 물론 환율 급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진다. 그런 만큼 한국은행은 연말까지 남은 두 차례의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지나갈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곧바로 시장금리를 올려 하락세를 타고 있는 국내 집값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미 부동산시장의 기상도는 잔뜩 흐려져 있는 상태다. KB국민은행이 지난 28일 발표한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전국 주택가격은 지난달과 비교해 0.14% 하락했다. 대표적인 민간 통계인 KB국민은행 시세로 전국 주택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9년 7월의 -0.01% 이후 3년 1개월 만이다. 앞서 정부 공인 조사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의 통계 기준으로 전국 집값은 지난 6월 0.01% 하락하며 2019년 8월의 -0.05% 이후 2년 10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8월 전국 아파트 가격은 지난달 대비 0.23% 떨어지는 등 연립·다세대 및 단독주택을 포함한 전국 주택가격보다 하락 폭이 더 크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월 대비 0.15% 하락한 가운데 세종(-0.81%),대전(-0.77%), 대구(-0.54) 등 지방 주요 도시와 경기(-0.33%), 인천(-0.37%) 등 수도권에서 내림세가 두드러졌다.

KB국민은행이 전국의 시가총액(시세×가구수) 상위 50개 단지를 선별해 가격 변동률을 지수화한 ‘선도아파트 50지수’는 0.72% 하락해 지난달의 -0.24%에 이어 2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낙폭은 2020년 4월의 -0.91%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크다.

선도아파트 50지수는 서울, 경기, 부산 등 대도시권 내 핵심 지역 ‘대장주’ 단지의 가격 흐름을 나타내 부동산시장의 선행지표로 평가받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비싸고, 단지 규모가 클수록 상위권에 속한다. 여기에는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강남구 은마아파트 등 전국에서 시가총액이 높은 랜드마크 단지가 모두 포함돼 있다.

당초 이들 단지는 하락장에도 버틸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전국적인 집값 하락세와 맞물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가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강남불패’ 공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