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서민

민주당 당헌 80조 1항은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킨다’는 내용,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를 하던 2015년 만든 조항으로, 보다 깨끗한 정치를 하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이 조항이 문제가 됐다. 다들 알다시피 이재명은 대장동 의혹과 성남FC 의혹, 변호사비 대납의혹 등등 기소될 사유가 한둘이 아닌 분, 그래서 이재명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과 개아들은 당헌 80조를 완전히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미 이재명의 사당이 된 민주당은 국민을 속이면서 이 조항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고안했고, 결국 꼼수로 점철된 개정안을 만든다. 원래 80조 3항에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고려해 ‘정치보복으로 기소된 경우 윤리심판원이 판단해 징계를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었는데, 판단의 주체를 윤리심판원 대신 당무위원회로 바꿔버린 것이다.

당무위 의장은 당대표가 하는 게 관례, 따라서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면 본인이 자신의 직무 정지 여부를 결정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꼼수 개정안은 민주당 중앙위원회 투표에서 과반에 미달해 부결된다. 당시 한 시사프로에 나온 민주당 패널은 "이게 통과됐다면 중도층의 지지를 잃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다"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민주당에겐 중도층 지지보다 이재명 구하기가 더 중요한 문제이며, 집토끼라 불리는 강성지지층을 중도층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은 일사부재의 원칙을 무시한 채 부결됐던 개정안을 다시금 투표에 부쳤고, 결국 과반의 찬성을 얻는 데 성공한다. 대선에서 패배한 분이 두 달여 후 민주당 텃밭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고, 두 달여 후 당대표가 되는 것도 모자라, 기소를 당해도 계속 당 대표 자리를 지키게 된 것이다.

이른바 ‘이재명 방탄의 완성’, 신기한 것은 이런 짓을 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다는 점이다. 이게 이번 일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김혜경 씨 법인카드 의혹 수사가 편파적이라며 지난 정권 때 수사했지만 기소조차 못했던 김건희 여사의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고, 법사위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에게 일방적으로 당해놓고선 그에 대한 탄핵을 언급하는 걸 보라. 이쯤 되면 세계 정당사상 가장 뻔뻔한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이긴 김대중 후보는 당선의 기쁨도 제대로 표시할 수 없었다. IMF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를 넘겨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선 다음날부터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이듬해 1월 국민들에게 1년 반이면 IMF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당시 한나라당 인사가 한 다음 말은 충격이었다.

"1년 반 안에 IMF 극복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다." 당시 외국의 경제연구기관들이 위기 극복에 최소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DJ 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졸업한 것은 3년이 지난 2001년 8월이었으니, 야당 입장에선 당선인의 말이 허황하게 들렸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란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분야, 다른 이도 아닌, 외환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정당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게 나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1년 반에 할 수 있게 적극 돕겠다’고 말했어야지 않을까? 세상일에 무관심하던 내가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그 즈음인데, 내가 좌파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보수정당의 이런 뻔뻔함에 질려서였다. 그로부터 25여 년이 지난 후, 한때 보수의 특징으로 생각했던 뻔뻔함은 이제 좌파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난 ‘보수 100년 집권’을 외치는 강성 보수 인사로 변신했다.

원래 경제나 외교에 무능한 게 좌파들이었는데, 도덕심마저 내팽개쳤으니 이 집단을 지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보수도 알아야 할 게 있다. 뻔뻔함이란 건 자만에서 생겨나는 것, 낮은 자세로 여론을 경청하지 않는다면 다시 97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보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아닌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