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인 내년도 예산안은 ‘허리띠 졸라매기’로 요약된다. 총지출 증가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국가채무비율을 일제히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 간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랏빚을 제어해 재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일환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정 여력의 확보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통해 "불확실성 아래에서 우리 경제 최후의 보루이자 안전판인 재정의 건전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큰 정부와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민간과 시장의 역할에 무게를 두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철학도 재정 기조의 전면 전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성장은 재정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민간의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추 부총리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추 부총리는 또 "경기와 관련해서는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시점에 각국의 거시적인 움직임이 별도로 있을 것"이라면서 "중앙은행도 금리 방향 등을 적절한 시점에 고심하지 않을까 한다"고 부연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 운용이 재정건전성을 뒤흔든 최대 요인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7년 660조원에서 올해 107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국가채무, 최근 3년 간 매년 100조원을 넘나든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곧바로 줄이지는 못하더라도 기조를 전환해 점차 감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년 예산안에 담긴 각종 재정지표에서도 건전재정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드러난다. 정부는 2018∼2022년 연평균 8.7%였던 총지출 증가율을 5.2%로 묶었고,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올해의 절반 수준인 2.6%로 설정했다. 국가채무비율은 49.8%로 50%를 넘지 않도록 했다.

건전한 재정을 위해서는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증세 등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방법보다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내년 총수입은 올해 본예산보다 13.1% 늘어난 625조9000억원이다. 하지만 올해 초과세수를 반영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과 비교하면 총수입 증가율은 2.8% 수준이다. 반면 내년 총지출은 2차 추경 대비 6.0% 줄인 639조원으로 설정했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증가율은 5.2%로 지난 2017년 3.7%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총수입과 총지출의 조정을 통해 올해 대비 내년에 생기는 가용재원은 31조원 정도다. 이 가운데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지방이전 재원 22조원을 떼면 중앙정부가 쓸 수 있는 돈은 9조원이다. 이에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33조원의 재정 여력을 확보했다.

이렇게 확보한 재정 여력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를 비롯한 핵심 정책과제에 투입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선정한 110대 국정과제의 5년 소요예산 209조원 중 내년 예산안에 반영된 것은 병사 월급 인상, 부모급여, 청년도약계좌 예산 등 11조원이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 사회적 약자 보호에도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덮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재정지출을 줄이면 경기 대응력이 떨어지고,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재정적자 누적과 국가채무 증가는 세대 간 공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성도 위협한다.

특히 경제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의 여력이 국가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자 안전판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유의미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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