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혼다와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을 갖고 앞으로 총 44억 달러(약 5조1000억원)를 투자해 미국에 4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기로 했다. 사진은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왼쪽)과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혼다와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을 갖고 앞으로 총 44억 달러(약 5조1000억원)를 투자해 미국에 4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기로 했다. 사진은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왼쪽)과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 /LG에너지솔루션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는 배터리 핵심 광물의 탈(脫) 중국화 과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당장 내년 1월부터 중국산 배터리 핵심 광물과 부품을 사용한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수산화리튬·코발트·흑연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는 90% 가까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3사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과 합작을 통해 북미에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묘수’를 추진함에 따라 오히려 날개를 달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 완성차업체들과 동맹을 맺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9일 일본의 완성차업체 혼다와 5조1000억원을 투입해 미국에 5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 착공해 2025년 말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양산할 예정이다. 부지는 혼다 전기차 공장이 위치한 오하이오주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혼다와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큐라(Acura) 전기차 모델에 공급된다.

혼다는 지난해 판매량 기준 글로벌 상위 7위에 들어가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다. 오는 2030년까지 50조원을 투입해 전기차 모델 30개를 연 200만대 이상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이번 혼다와의 협력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완성차업체 상위 10개사 가운데 8개사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 사실상 중국이 빠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합작을 시작으로 다양한 일본 기업과의 협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하나인 삼성SDI는 지난 5월 미국·프랑스·이탈리아 3국 합작 완성차업체인 스텔란티스와 함께 미국 인디에나주에 3조3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올 하반기 착공을 앞둔 합작 배터리 공장은 오는 2025년 1분기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합작공장이 완공되면 스텔란티스가 만드는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생산하게 된다.

SK온은 지난달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출범시켰다. 블루오벌SK는 10조2000억원을 들여 미국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합작 배터리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SK온은 미국 내 자체 생산시설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지아주에 2곳의 배터리 공장 건립을 통해 총 150기가와트시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국내 배터리 3사가 북미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발판 삼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쥘 기회라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중국의 CATL이 34.8%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시행으로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부품이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게 되면서 그 공백을 자금력과 기술력을 가진 한국산 배터리가 대체하게 된 것이다.

다만 배터리 제조의 핵심 광물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것은 국내 배터리 3사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수산화리튬의 중국 의존도는 84.4%에 달했다. 이 밖에 코발트와 흑연은 각각 81%, 89.6%를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배터리 핵심 광물의 공급망 다양화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해외투자 금액이 30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배터리 업계를 향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구애도 계속되면서 향후 추이에 따라 5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국 내에서 배터리를 조달하는 방식을 활용해 왔다"면서 "하지만 미중 갈등이 더 심화되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공급망 위기를 줄이는 차원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와의 합작공장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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