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CC·세계성시화운동본부, 29일 ‘김준곤 목사 선양 학술심포지엄’ 개최
“한국교회에 세계선교 중요성 고취...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지상명령 수행케 해”
“독재정치 하던 박정희에게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혁명의 사명 감당할 것 주문”
민족복음화운동 도화선 된 ‘엑스플로 74 대회’ 등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 미쳐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하는 김준곤 목사. /CCC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하는 김준곤 목사. /CCC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은 민족을 구원해 ‘민족을 변혁하기 위한 영적 혁명’ 운동이었다. 그가 추구한 혁명은 세속적인 혁명이 아닌 영적인 ‘예수 혁명’이었다. 여기에 파생된 표현이 ‘영적 혁명’, ‘민족 예수 혁명’, ‘세계선교 혁명’이다.”

29일 한국대학생선교회(CCC)·세계성시화운동본부 주최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김준곤 목사 선양 학술심포지엄’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성영 박사(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전 회장, 전 성결대 총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유성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과 민족목회사상’이란 주제로 발표한 김 박사는 “유성의 민족복음화운동은 대사회적인 관점에서 예수의 소문을 세상에 널리 전파했다”며 “실제적으로는 1971년 민족복음화운동 선언 이후 불과 20년 만에 기독교 신자가 4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부흥과 연합운동에 기폭제가 됐다. (김준곤 목사는) 다양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할 때마다 언제나 대전재로 개교회가 적극 참여하는 연합운동이 돼야 한다고 했다”며 “또 한 가지, 한국교회에 세계선교의 중요성을 더욱 고취시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의 지상명령을 수행토록 했다”고 故 김준곤 목사에 대해 평가했다.

그는 김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의 특징을 ▲한 민족의 완전복음화를 지향한 운동 ▲한 민족의 성도화 모델을 추구한 운동 ▲세계복음화를 위한 발전적·병행적 종말운동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병행한 입체적 구원운동 ▲민족 변혁을 위한 혁명운동 등으로 정리했다.

◇“한국 현대사는 그와 민족복음화운동 말하지 않고는 바른 평가가 불가능”

국제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왼쪽), 세계적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가운데),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오른쪽)가 '엑스플로 74대회'에서 함께한 모습. /CCC
국제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왼쪽), 세계적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가운데),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오른쪽)가 '엑스플로 74대회'에서 함께한 모습. /CCC

“김준곤은 민족복음화를 단순히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믿고 꿈 꾼 것은 ‘전 복음(Whole Gospel)’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며, 가난한 나라에도 경제는 물론 모든 분야에서 일등 국가가 되는 신명기 28장의 하나님의 축복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이날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으로서의 유성의 민족복음화운동’이란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철해 박사(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는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김준곤의 모든 사역은 오로지 믿음으로 민족복음화운동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며 “학생들을 순모임이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은 제자화의 조직으로 양육했고, 민족복음화의 꿈을 안고 농어촌 5만 9천 자연부락 사랑방 구석구석을 복음으로 불태웠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자연스럽게 이들을 통해 대전 1만 명 합숙 훈련이 횃불이 돼, 준비과정과 경험을 거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엑스플로 74의 대폭발이 여의도광장에서 터지게 됐다”며 “이 폭발은 군사혁명 정권의 독재 아래 있던 국민들에게 아주 선한 의미로의 탈출구가 돼, 복음전파의 불이 붙고 교회마다 큰 부흥을 경험해 한국교회는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현대사는 그와 민족복음화운동을 말하지 않고는 바른 평가가 불가능하다”며 “군사혁명을 일으킨 후 독재정치를 하던 박정희를 하나님은 (김준곤 목사가 만든)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예수의 복음을 갖고 당당히 만나는 길을 열어 주셨다. 당당히 예수의 복음과 공의와 정의로 정치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꿈을 심어 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혁명가 박정희에게 ‘혁명의 개념을 혁명하라’고 도전을 주며 군사혁명이 넘어가지 못할 한계선을 예수의 혁명으로 성령의 혁명으로, 사랑의 혁명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혁명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주문했다”며 “실로 그는 박정희 개인의 목사이며 청와대의 담당목사이며 마치 대한민국의 종교국 비공식 장관정도의 역할로 존재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준곤 목사의 신학세계로 본 한국교회의 세계선교운동’이라는 주제로 정경호 박사(총신대학교대학원 선교신학)가 발제했고, 박응규 교수(아신대학교/ACTS, 역사신학), 김요섭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임경철 총장(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Pacific 선교학)가 각각 앞선 세 발제자에 대한 논찬을 진행했다. 

◇한국교회 성장과 세계선교 확장에 지대한 영향 미친 故 김준곤 목사

고인이 되기 직전의 김준곤 목사의 모습. /연합
고인이 되기 직전의 김준곤 목사의 모습. /연합

이날 발제 순서에 앞서 진행된 개회식에는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의 사회로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가 인사말을 전했고, 김진표 국회의장과 김상복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전용태 장로(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두상달 장로(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명예회장), 김영진 장로(전 농림부 장관)가 격려사를, 류영모 목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서삼석 국회의원(민주당 신안), 이용선 의원(민주당), 박우량 신안군수, 조용호 회장(CCC 전국나사렛형제들)이 축사를 했다.

김상복 목사는 “김준곤 목사님은 한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고 한국교회를 목회하신 목회자이셨다. 만일 한 지역교회만 목회하셨던라면 세계 제일의 한국CCC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 많은 대학생들이 신앙의 힘으로 한국사회의 기둥들이 되어 이 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CCC 창설자 故 김준곤 목사(1925~2009)는 1925년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봉리에서 출생했다.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유학길에 오른 뒤 풀러신학교에서 CCC 창설자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 귀국 후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설했다.

이후 ‘오늘의 학원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슬로건으로 대학생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고, 1965년 국회조찬기도회, 1966년 국가조찬기도회를 비롯해 1968년 나사렛형제들을 창단하고, 1969년 전군신자화운동, 1971년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한 데 이어 1974년 민족복음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1974년 엑스플로 74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10만 선교사 헌신을 서약한 ’80세계복음화대성회 개최,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 창설, 1990년 2000마닐라대회 개최, 1995년 전 세계 181개국 4500명 지도자들이 세계선교전략을 논의한 GCOWE 대회 개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조직, CCC 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 등도 이끌며 ‘민족복음화운동’을 기치로 한국교회 성장과 세계선교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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