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신구·박정자·백일섭·오영수·손숙·정동환...원로 배우들 활약
오랜 무대 경험·인생 연륜에서 나오는 '캐릭터 분석' 탁월

화제의 ‘대학로 방탄노년단’. 맨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순재(1935~) 신구(1936~) 박정자(1942~) 정동환(1949~) 손숙(1944~) 오영수(1944~) 백일섭(1944).
화제의 ‘대학로 방탄노년단’. 맨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순재(1935~) 신구(1936~) 박정자(1942~) 정동환(1949~) 손숙(1944~) 오영수(1944~) 백일섭(1944).

‘대학로 방탄노년단’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순재·신구·박정자·백일섭·오영수·손숙·정동환, 이들 70~80대의 원로 연극배우들의 활약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세계적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7인의 젊은이로 구성돼 있다면, 방탄노년단은 남녀 혼성 7인이다.

아이돌 스타들이 애칭으로 통하듯, 순재·구·정자·일섭·영수·숙·동환이란 호칭을 자연스레 구사하게 될지 모른다. 이들은 데뷔한 지 50~60년, TV·영화를 통해 친숙한 경우도 있지만 연극무대의 내공이 탁월하다. ‘연극무대’를 본연의 업으로 여기는 배우들, 해방 후 우리나라 연극계를 지켜 온 대배우들이다.

준비단계 때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연극 ‘햄릿’은 흥행에 성공했다. 이례적으로 수익을 냈을 정도다. 젊은 배우가 주역, 원로 배우들이 중량감 있는 조연을 맡아 작품의 깊이와 재미를 더했다. 일부 출연진의 코로나 확진으로 10회나 공연 취소를 하고도 이룬 대성공이었다. 표가 80% 이상 팔렸고, 중·장년층과 젊은 관객이 많았던 것도 화제였다.

"무대를 평생 지켜온 배우들을 향한 기립 박수가 매회 터졌다", "노병은 죽지 않았다"며 연출가 손진책(74)이 감개어린 소감을 밝혔다. 이들 원로 배우 중엔 ‘여든일곱 살의 리어왕’ ‘연극계의 대모’로 불려온 인물이 있는가 하면 골든글로브 수상자도 있다.

최여정 공연칼럼니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평균 연령이 80세의 방탄노년단은 영화·드라마로 친숙한 얼굴에 연기력도 검증됐다." 따라서 "안심하고 선택하게 하는 이름들이다." 블랙코미디 ‘아트’(9월 17일부터 예스24스테이지)의 경우, 아직 개막 전인데 이순재·백일섭이 출연하는 회차가 벌써 매진됐다.

관객들의 폭발적 관심이 예매 상황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티켓파워 최고의 멤버는 방탄노년단 최고령의 이순재다. 작년 3시간 20분짜리 ‘리어왕’에선 홀로 리어를 연기하며, 31회 모든 회차를 매진시킨 후 앙코르 공연까지 했다.

가장 글로벌한 멤버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1번 참가자였던 오영수다. 이번 가을엔 박정자와 ‘러브레터’(10월 6일부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를 선보인다. 두 남녀가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들로 꾸며진 연극 무대다.

오영수·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인연이기도 하다. ‘장수상회’(9월 17~18일 용산아트홀)엔 이순재·손숙·백일섭 3명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2016년 초연 이래 국내외 60여 개 도시에서 흥행을 거뒀다. "효도 공연으로 부모님을 모셨다가 연극에 재미를 붙인 30~50대 관객도 많다"고 손숙이 전했다.

올해 상반기 최고 흥행작, 신구·오영수의 ‘라스트 세션’을 빼놓을 수 없다(원제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신의 서재에서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젊은 C.S.루이스와 나누는 방대한 대화로 채워졌다.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영성을 추구하는 루이스, 두 사람의 저서와 관련 연구에 기반해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연극이다. 한편 신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변신한다(‘두 교황’ 8월 30일~10월 23일, 한전아트센터). 교황 프란치스코(정동환)와 지적인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오랜 무대 경험과 인생 연륜에서 오는 ‘캐릭터 분석’ 능력이 방탄노년단의 최대 강점으로 평가된다. 관객의 세대층을 확장했다는 공로가 크다. 40~50대 관객 비율이 25%에 불과한데, 방탄노년단이 나오면 40%대로 뛰어오른다고 한다. ‘햄릿’ ‘두 교황’ ‘장수상회’가 다 그랬다. ‘러브레터’는 40~50대 관객이 60%를 넘었다.

고등교육이 대중화된 세대, 그러나 ‘예술로서의 연극’ 대신 ‘오락으로서의 영상 매체’ 속에 성장한 한국 중년층에게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현상을 이끈 존재가 바로 대학로 방탄노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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