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한동훈 장관의 인사청문회와 장관 취임사, 여러 국정질의 답변이 모두 화제다. 하지만 주목할 대목인데 조용히 지나간 경우도 있다. ‘인상깊게 읽은 책’이 그렇다. 국회의원들의 질의서 답변란에 당시 한 후보자는 오에 켄사부로의 ‘하마에게 물리다’를 꼽았다고 한다.

일본의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는 심오하다. 편하게 다가가긴 힘든 작가다. ‘하마에게 물리다’의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이것을 거론한 한 장관의 메시지를 상상하며 탄복했다.

두 편의 연작 소설 형태로 1985년 발표된 ‘하마에게 물리다’는 일본 운동권 세대 후일담에 속한다. 1972년 2월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연합적군파 아사마 산장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해낸 작품이다. 인간과 이념,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의 문제를 생각하게 해준다. ‘적군파’, 인터넷 검색하면 금방 나온다. 인질극, 내부자 린치 및 살해 등 이념의 명분 하에 벌어진 천인공노할 만행, 체포 후 감옥에서 자살한 리더,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했다든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참여한 흔적을 남긴 채 행방불명된 멤버 등등.

‘하마에게 물리다’의 주요 인물은 ‘나’, ‘하마 용사(勇士)’, 아사마 산장에서 동지의 손에 죽어간 멤버의 여동생 ‘호소미’다. 아프리카 거주 일본인 ‘하마 용사’ 뉴스를 아사마 지역 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하마에게 물려 크게 다치고 생환했다 해서 현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이 ‘하마 용사’였다. 알고 보니 아사마 산장 사건 관련자 중 유일하게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가 옛 지인의 아들임을 확신한 ‘나’는 편지 왕래를 시작한다.

공안 당국에 쫓기던 적군파 일행과 함께 아사마 산장에 흘러 든 ‘하마 용사’는 분뇨 처리를 맡았다. 그 때 나이 열일곱, 가장 어린 조직원이었다. ‘쓸모 없는 놈’이라고 얻어맞곤 했으나, 화장실이 넘치자 주변 강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연구하며 상황을 수습한다. ’나’는 ‘하마 용사’를 작품화 한 후 호소미의 방문을 받는다. 언니가 목숨걸고 매달린 ‘사상’, 단란했던 자기집을 파괴한 그게 대체 뭔지 궁금한 그녀는 실마리를 찾고자 ‘하마 용사’를 만나려 했다. 마치 일본인들의 보편 심정을 대변한 듯하다. 결국 그녀는 아프리카로 떠났고 ‘하마 용사’를 만나 남녀관계로 발전했음을 암시하면서 소설이 마무리된다.

‘하마’란 재미 있는 동물이다. 수질에 치명적인 녹조 덩어리를 구멍내 강·호수의 생태계를 회복시킨다. ‘물 먹는 하마’라기보다 ‘물을 살리는 하마’인 것이다. ‘세상의 녹조를 뚫어낼 하마’의 은유가 ‘하마 용사’일까. 아사마 산장 사태가 열흘간 TV 생중계되면서 9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상주의자들의 과격한 행위로 보는 동정적 시각도 있었으나, 이후 조사로 드러난 실체와 진상 앞에 여론이 급변했다. 일본사회가 운동권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1969년 1월 도쿄대 야스다 강당 농성도 그 해 입시를 못 치를 만큼 엄청났으나, 이에 비하면 약과다.

한국사회는 어떤가. 언제까지 ‘사람이 먼저다’ ‘우리민족끼리’ 같은 논리에 현혹되려나. 낭만적 환상에 갇혀선 개인도 사회도 어른이 못 된다. 탈이념적 언어로 이념적 인간들의 공격에 맞서는 한동훈 장관, 또 한번 절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관·세계관을 설명한 셈이다.

독서목록이란 그 사람에 대해 여러가지를 말해 준다. 유재일TV는 ‘하마에게 물리다’를 언급한 의미가 부각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하며, 한 장관에 환호해 온 사람들의 무지와 무심을 개탄했다. ‘한동훈의 하마’에 다들 물려 봤으면 한다. 나의 과잉해석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조적 오해’일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브리핑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브리핑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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