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이중섭 부인 마사코 여서 향년 101세로 별세

도쿄 미술학교에서 선후배로 만나 '인연'...1945년 입국해 결혼
가난 속에 결핵 앓는 등 고생...1952년 요양차 아들과 일본행
1956년 남편 사망 '영원한 이별'...이중섭에겐 예술적 영감 원천

1938년 도쿄의 사립 미술학교(文化學院) 선후배로 만나 2년 후 연인으로 발전한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
1938년 도쿄의 사립 미술학교(文化學院) 선후배로 만나 2년 후 연인으로 발전한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

화가 이중섭(1912~1956)의 뮤즈, 부인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1921~2022)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1.

13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938년 도쿄의 미술학교에서 선후배로 만난 이래 사랑과 예술로 하나된 인연, 이중섭에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유명한 소() 그림들과 함께 가장 많은 표제가 가족이다. 더 다양한 소재로 걸작을 남기기 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마사코의 한국이름은 李南德’, 이중섭이 남쪽나라에서 만난 덕스러운 여인의 뜻을 담아 지어준 것이다. 평안남도 대지주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란 이중섭이지만, 시대적 혼돈에서 예외적 존재는 아니었다.

그가 1943년 태평양전쟁 중 귀국하자, 1945년 재벌기업 임원의 딸로서 프랑스 유학을 꿈꾸던 마사코는 모든 배경을 버리고 한반도로 그를 찾아와 결혼한다. 일제 패망 몇 개월 전이었다. 가난, 일본인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차별과 불편, 그러나 그 속에서 함께했던 약 7년의 추억으로 그녀는 이후 70년 두 아들을 키우며 홀로 살았다.

아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 애틋한 가족애를 모르면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육이오 때 16개월 동안 부산과 제주, 다시 부산을 전전했다. 그런 와중에 마사코가 폐결핵으로 각혈을 했고 두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린다.

그러나 부부는 이 피란 시절을 훗날 가장 행복한 때로 꼽는다. 바닷가 조개를 주워 끼니를 이어야 할 정도였지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마사코가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요양 차 한동안 일본에 가 있기로 하고 귀환선을 탄 게 19527월이었다. ‘잠시로 생각했던 일본행이 영원한 이별이 됐다. 한일국교정상화 이전이라 밀입국 아니면 오갈 수 없었다.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하길 간절히 바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그림이 팔리지 않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고,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캔버스나 스케치북 살 돈이 없어 합판이나 종이, 담배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물감과 붓 대신 연필·못을 써야 하기도 했다.

홀로 지내던 이중섭은 거식증 조현병으로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19567월 간염으로 입원했다가 그해 9월 세상을 떠난다. 무연고자로 신고돼 있어 친구들이 달려가기까지 3일간 안치실에 방치돼 있었다.

편지·엽서 100 여 점 또한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 가 있는 처자식과 소통할 유일한 길이었다. ‘뽀뽀가 우리말 발음으로 표기돼 있는가 하면, 삽화가 곁들어진 손글씨 글들이 눈물겹다. 마사코 여사가 70년을 혼자 지내온 이유였는지 모른다.

"오늘로 1년째, 이렇게 헤어져 긴 세월 보내는 것을 못 견디겠소.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있어야 하오. 당신과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얼마나 마음이 들떠 있나 생각해 보구려. 힘을 내주시오. 답장 기다리오(1954년 여름).“

1954년 겨울부터는 한층 간절해진다.

"지금 당신을 얼마만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 글로 내 마음을 전할지, 얼마나 훌륭한 그림을 그려야 내 마음을 전할 수가 있을지, 나의 귀엽고 너무나도 귀여운 선생님, 제발 가르쳐줘요. 그대들만 곁에 있다면 척척 그려내겠소. 자신만만합니다.“

"언제나 내 가슴 한가운데 나를 따듯하게 해주는 나의 귀중하고 유일한 천사 남덕 군, 건강하오?“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오.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어요. 세상에 나만큼 자기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을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버린다오.“

"나의 가장 높고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기쁨, 한없이 상냥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나만의 오직 한 사람, 현처 남덕 군.“

"나만의 소중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한, 한없이 상냥한 유일무이한 사람, 귀중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모든 애정의 주인, 나만의 천사,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군 힘내시오. 파파 중섭."

이중섭의 유화 ‘가족’(1953~54).
이중섭의 유화 ‘가족’(19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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