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國’은 ‘창(戈)’ 주위에 울타리가 쳐진 모습이다. 무력 집단 내지 외적을 방어하는 공동체를 형상한다. 갑골문의 ‘民’자는 눈(目)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고 있다. 앞을 못 보게 해서 순치시킨 포로, 그게 ‘백성民’의 기원이다. 인류는 잔인한 약탈과 전쟁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타협과 인권의 깨달음은 근대 자본주의를 거치면서다.

2500년전 유교 경전(禮記)에 ‘國民’이 등장하지만, 우리말 ‘국민’은 서구 언어 ‘nation’(네이션 등)의 일본어 번역 ‘kokumin(國民)’에서 왔다. 근대화의 핵심 키워드, 바로 ‘백성을 국민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17세기 이후 서구의 개별 주권국(nation state) 개념이 한자문화권에 19세기 중후반 이래 빠르게 수용된 것은 영토·주민에 기반한 ‘國’ 개념이 오래 전 수립돼 있던 덕분이다.

근대 들어 ‘nation’에 ‘정치적 공동체’의 의미가 강해졌고, 혈연·언어를 넘어 종교·이념의 동지들을 아우르게 된다. 이 과정이 유럽의 근대사였다. 19세기 일본에서 ‘nation’을 당초 ‘minzoku(民族)’라고 번역한 것은 본래 어원(조상·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말 ‘민족’이 됐고 덩달아 ‘겨레’까지 복원돼 표준어로 진입했다.

‘민족’이란 혈통적 인연에 주목하는 개념이라 불가피하게 배타적이다. 하나의 문화·정치 공동체가 외세와 겨루며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시기엔 매우 유효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극복돼야 한다. 강렬한 ’단일민족‘ 의식이 지배하는 경우엔 폐해가 더 크다. "민족에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며 이룬 통합성, 그게 ‘국민’이어야 한다. 한 핏줄이라서가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기에 함께 하는 사람들, 자기 나라에 귀속감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모든 국가는 불완전하고 건설적 비판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여긴다면 그 국민으로서의 혜택도 포기하는 게 맞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