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
홍성기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적 토대, 즉 그것 없이는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고 다수결이라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서도 훼손할 수 없는 가치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부른다. 이 질서 중에 삼권분립이 포함되어 있다. 만일 국가권력의 세 측면인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을 하나의 국가기관이 행사할 수 있다면, 국민은 약간의 자유와 권리도 국가에 애걸해야 한다.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서로 독립되어 있다. 상호 견제를 통해 자의적 통치를 막도록, 세 기관이 갖는 국가권력을 분리해서 각각 헌법과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삼권분립이 법률에 명시된 국가에서도 자의적 통치는 계속될 수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상호 견제를 해야 할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같은 정치적 이해 관계 하에서 협조를 하는 경우다. 이것은 정치적 자유가 심하게 억압된 독재국가뿐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이 삼권을 장악할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문재인 정권 시절을 돌아보면 된다. 여기에 국가권력과 이념과 이해를 공유한 언론과 시민사회는 자의적 권력 행사를 지지했다. 따라서 국가는 굳이 언론 집회 및 사상의 자유를 억압할 필요도 없었다. 언론의 정보 왜곡도 공익을 위한 언론의 자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형은 삼권분립의 민주국가이지만 내용은 자발적 연합체, 즉 ‘삼권과 언론의 카르텔’이 형성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국가기관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다르거나 혹은 이들이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자의적 통치 문제는 자동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 기관이 갖는 독립적 권력 자체, 즉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이 개별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연수을 선거무효소송을 기각한 대법원의 판결은 정상적인 사실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소송을 제기한 국민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됐다. 다른 한편 현재 국회에서 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불법을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당의 정치인들에 대한 형사소추를 막기 위해 법무부 장관의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삼권분립에 의한 상호 견제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문재인과 윤석열 정권에서 유난히 검사들끼리의 싸움이 극에 달하고, 또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변호사들의 비판이 많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법의 정당한 행사와 자의적 행사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다. 만일 정당한 권력 행사와 자의적 권력행사가 대규모로 충돌하고, 언론의 조작과 왜곡으로 2016년처럼 국정이 마비되면 누가 이익을 보겠는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삼권분립을 권력투쟁 혹은 권력탈취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현상을 ‘삼권의 당쟁화’라고 부른다면, 2016-17년 박근혜 탄핵 사태와 삼권 카르텔이 깨진 현 한국의 정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착잡한 점은, 언론을 포함해서 자의적 권력 행사의 대부분이 합법적이라는 사실이다. 명문화된 법은 추상적 실체이지만 법에 의한 권력 행사는 수많은 구체적 상황과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구체적 상황에서 법의 적용 즉 권력의 행사는 또 다른 법으로 일일이 규제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합법적인 권력 행사를 위해서는 일종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자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항상 있다. 지금 한국에는 권력과 권력의 행사, 법과 법의 행사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개별 권력 기관들과 언론이 명분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즉 ‘합법적이지만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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