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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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소프트 어트랙션’(soft attraction)을 할 줄 안다. 자신들의 문화에 부드럽게 천천히 이끌리게 하는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나를 아주 천전히 똑똑한 방법으로 한국문화의 ‘노예’로 만들었다.

처음 김치를 접할 때 한국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집 김치를 공짜로 가져다 주었다. 낯선 음식이었지만 그들의 친절한 마음에 먹어 보게 됐고, 이제는 김치 없이는 안되는 지경이 됐다. 그래서 내 돈 주고 사먹는다.

젓가락질이 서툴 수밖에 없는 내가 어찌어찌해서 반찬을 하나 집어 올리면 그들은"와! 젓가락질 잘한다"며 박수를 쳐줬다. 으쓱해진 나는 점점 더 젓가락질을 잘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의자가 아닌 방바닥에 앉아 젓가락으로 김치를 먹고 병이 아닌 잔으로 맥주를 즐기게 됐다.

이제는 포크나 나이프보다 젓가락이 훨씬 더 평화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개의 분리된 나무로 음식을 들고 있으면 두뇌 활동이 활발하게 좋아진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알츠하이머 퇴치에 도움이 된단다. 또 포크로 음식을 찌르는 것보다 덜 폭력적이다.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것은 싸운 커플에게도 도움이 된다. 돈 때문에 다퉈 하루종일 서로 말을 하지 않던 부부와 저녁을 함께 하게 됐다. 남편이 김치를 집는데, 너무 컸다. 마주 앉아 있던 아내는 마지못한 듯 젓가락을 보태 김치 찢는 것을 도와줬다. 둘 사이에 흐르던 냉랭한 기류가 약간 바뀌었다. 아내가 겹겹이 포개진 깻잎장아찌를 떼려 하자 남편 젓가락이 번개처럼 달려와 도와줬다. 아내가 머쓱하게 웃자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사랑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경우가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가지고 오지는 않지만.

친구들은 한국문화를 가르쳐 주면서도 혹시 내 감정이 상할까봐 조심했다. 반면 나이든 특히 70세 이상 여성분들은 직접적이었다. 그들은 내 기분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남부 지방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나는 반바지를 입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남자는 그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으면 안된다"면서. 나는 그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사실 고맙기는커녕 불쾌했다. 호텔로 돌아와 가만 생각해보니, 그 할머니는 제약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왔을 것이고 그 눈에 나의 짧은 바지는 불경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그 할머니는 내 기분을 살피며 한국문화를 알려주던 친구들보다 오히려 나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기 손주에게 하듯 직접적이고 단호했다.

다음날 나는 긴 바지를 입고 작은 마을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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